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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벗 Jul 20. 2024

보리 혼식

사춘기를 배웅한 보리가 이번에는 갱년기를 마중 나왔다. 

어릴 적, 보리를 섞어 지은 혼식이 그렇게도 싫었다. 쌀과 보리를 7대 3로 섞은 혼합곡은 언뜻 보면 쌀이 주류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맹점은 두 가지다. 첫째 보리는 쌀에 비해 두 배 가량 몸집이 크다. 크기 격차가 큰 이상 단순히 수에 대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크기로 따져봐야 좀 더 명확해진다. 크기로 보자면 쌀과 보리는 2대 1이 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두 번째 맹점은 쌀은 찰기가 있어 본디 모양을 보존할 수 없는데 비해 보리는 찰기가 적어 웬만큼 그 형태를 보존하기 때문에 크기로 보아 쌀과 보리가 3대 1일 될지 4대 1일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쌀에 보리를 섞었지만 보리에 쌀을 섞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백미가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국민건강증진 차원에서 보리혼식을 장려한다고 했지만 실상 쌀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가난한 정부의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보리혼식에 꽤나 호의적이었다. 7대 3라는 쌀과 보리의 비율은 어느 정도 수용가능한 수치이기도 하거니와 보리의 영양가는 쌀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니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터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빠듯했고 먹여 살려야 할 식솔도 많았으니 부득불 보리혼식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급식이 없었던 국민학교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아이들 도시락 뚜껑을 열어 일일이 검사했다. 혼식을 하지 않은 것이 적발될 경우 다양한 벌칙을 부가했는데 주로 화장실 청소나 운동장 열 바퀴를 돌아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한 번도 벌칙을 받아본 일이 없다. 보리혼식령을 철통같이 지키는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께서는 투철한 공무원 정신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어쩌면 외벌이로 4남매를 키워내야 했던 가장의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식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힘겹게 운동장을 돌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부러움도 뒤섞여 있었다. 쌀밥을 먹은 저 아이의 살결은 얼마나 희고 보드라울까. 그런 상상을 하면 벌칙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있어야 할 치욕이 되려 내 얼굴로 삐득삐득 올라왔다. 




문제는 도시락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에도 보리혼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얀 쌀밥 사이에 섞여 있는 보리는 밥의 찰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색깔도 누런 것이 아주 얄궂다. 갓 지은 밥은 그럭저럭 먹을만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보리에서 진득한 물기가 베어 나와 씹을 때마다 미끄덩거리는 식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밥이 주식이었던 시절이라 밥통에 밥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소진되었지만 어쩌다 하루를 넘긴 밥은 일명 ‘식은밥’이 되어 고약한 쉰내를 펄펄 풍기는데 그 주범도 다름 아닌 보리였다. 식은 밥을 먹을 때면 콧구멍을 틀어막아도 올라오는 군내 때문에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소화는 얼마나 빨리 되는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고 움직일 때마다 물색없이 새어 나오는 방귀 때문에 ‘방귀신’이라는 마뜩잖은 별명까지 얻고 보니 보리라는 놈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느껴졌다. 숙적과의 작별은 사춘기를 앞두고서야 성사되었다. 더 이상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더는 보리혼식을 고집하지 않으셨다. 무려 10년 남짓, 함께 해 온 보리였지만 작별에 관하여 일말의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다만, 다시는 보리와의 재회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보리혼식을 다시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보리혼식을 생각했다. 체구가 작고 잔병치레도 쾌나 있었지만 제법 다부졌던 그 아이를 생각했다. 된서리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런 콧물을 훔쳐 내느라 소매부리가 반질반질해지도록 뛰어놀던 아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학교 운동회를 할 때면 달리기며 오래 매달리기 선수로 출전하여 기어코 1등을 거머 줬던 아이. 그렇게도 잠이 많고 깊어서 끝도 없는 꿈을 꾸었던 아이. 그 아이를 도담도담 길러 준 보리를 생각했다. 사춘기를 배웅했던 보리가 이번에는 갱년기를 마중 나왔다. 어느덧 맞이한 갱년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더니 식은땀이 났고 밤이면 심해지는 통에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보리가 갱년기에 좋다는 말을 듣고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병원 신세를 지고 싶진 않았기에 도리없이 보리혼식을 시작했다. 누런 때깔에 미끄덩거리는 식감. 강산은 몇 번이고 변했거늘 너는 여전하구나. 보리혼식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자 심장은 점점 편안해졌고 깊은 잠을 자는 날도 많아졌다. 어린 소녀를 꿈꾸게 했던 그 보리로 하여금 나는 다시 꿈을 꾼다. 건실하고 달큼하게 익어갈 나머지 생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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