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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럽미 Mar 27. 2024

수상한 하루

이별





시끄러운 모닝콜 소리에 벌떡 일어나자마자 침대 모서리에 발등을 찢겼다. 

머리까지 찡한 아픔에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엉클어진 머리카락 잔뜩부은 얼굴과 입술.

… 꼴보기 싫다.


대충 씻은 얼굴에 스킨을 들이붓고 신발장으로 향한다. 찌릿하게 발가락이 아프다. 신으려던 구두를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지고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싸늘한 겨울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채 버스를 탔다. 습한 버스안의 눅눅한 냄새… 몇 분 뒤엔 당연한듯 익숙해지는 냄새지만 늘 속이 울렁거린다. 핸드폰의 메신저를 연신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광고 채널의 메세지 따위. 단체톡의 시시한 아침인사는 가볍게 패스한다.




 흐린 도시의 아침이 푸른 등을 켤 무렵 회사에 도착했다. 너도나도 흐느적 걷는 출근길의 사람들은 오징어 같다. 나도 따라 흐느적, 흐느적 걸어본다.


한기가 도는 사무실 구석 자리를 찾아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아침에 찢겨진 상처부위를 살펴보았다. 붉으스름한 핏자국이 양말에 살짝 스며들어있다. 아씨. 욕이 나온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아픈 부위에 약도바르고 밴드도 붙여야하는데, 그마저도 귀찮은 아침이라 생각을 그만 둔다. 욱씬거리는 발가락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곧 오전 회의를 준비해야하는데.



-



하루는 느리게 혹은 빠르게 지났다. 


눈은 몇번을 깜박였는지. 숨은 몇번을 쉬었는지 느끼지 못할 만큼 훌쩍 지나갔다. 오늘도 야근이냐며 어깨를 토닥이며 퇴근하는 김대리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고요한 사무실 안에선 가습기의 뽈뽈거리는 소리와 아까부터 회의실에서 조잘거리는 여자직원들의 웃음소리만 간간히 들린다. 주변을 둘러보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새창을 열고..

 ..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본다. 그날 이후 새로운 피드가 없다. 다만 얼마 전까지 있던 프로필 하단의 자기소개란이 빈 공간이 되었을 뿐이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내려 앉는다. 단순히 바뀐 프로필을 본 것 만으로 가슴이 울렁인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단순한 흔적에 갑작스러운 그사람의 근황을 알기라도 한 듯 심장이 미친듯 요동친다. 서둘러 창을 닫고 급하게 가방을 챙겼다. 


기분이.. 

더러워...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옅은 향수냄새에 알콜향이 밀려온다. 나는 술을 먹지 않았지만 아침과는 다른 메슥거림을 느낀다.  두정거장 전에 내려 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본다.

하. 하고 폐 가득 밤공기를 그대로 마셔본다.


오늘같이 추운날 우린 걸었다. 걷고 이야기하고 추우면 손 잡고 또 걸었다. 

겨울 밤의 향기, 늘 차갑던 당신의 손, 빨갛게 상기된 볼과 바람에 튼 입술까지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걷는 속도가 빨라 진다. 숨이 턱까지 찬다. 입안 가득 뜨거운 열기가 찬바람과 만나 뿌연 연기를 내뿜는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추억에 숨이 더욱 하얗게, 하ㅡ얗게 밤하늘에 뱉어진다. 발이 너무아프다. 그래 아침부터 였다. 이제야 양말을 적시던 새빨간 피가 느껴진다. 잊고 있었는데 잊혀지지 않았다. 잊은줄 알았는데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팠던 거다. 꽁꽁 얼어버린 발끝에 스며든 촉촉한 핏방울이 눈앞에 선명하다. 얼마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인 도로에 맨발로 걷는 것을 상상해본다. 무엇이 나를 더 찢어지게 아프게 할 것인가.상처난 발일까, 상처난 발로 걷게한 당신일까.


당신은 냉정했고 나는 비굴했다.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추접하게 당신을 잡았다. 나는 그날 나를 잊고 너를 버렸다. 너는 나를 버리고 너를 찾았다. 까맣고 작은 좀벌레로 너를 갈아먹었던 나를 용서하길.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잊고 함께 지옥으로 끌고가려했던 나를 당신의 기억에서 죽여주길.




걷던 눈길 위에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억하며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참을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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