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가 알려준 인생의 비밀
수능 후 고1 교실 풍경
고3 선배들의 수능 시험이 끝난 다음 주, 고1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교: 얘들아, 주말 잘 보냈어?
학: 아니요. 수능 당일은 놀아서 좋았는데, 주말 동안 괜히 심란하던데요.
교: 왜? 이제 수능이 2년 남았다고 생각하니 부담되니?
학: 예. 그런 거 같아요.. 게임할 때 잠깐씩 마음이 불편해요.
고3 선배들의 수능을 보며 2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고1 아이들. 아직은 먼 미래 같지만, 벌써부터 불안한가 봅니다.
교: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며칠 지나면 게임할 때 불편한 마음 싹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학: 주말 동안 책 안 보고 있을 때 괜히 엄마 눈치도 보이고 그랬거든요.
선배들의 이야기
교: 선생님은 주말에 헬스장 갔다가 사관학교 합격한 형 만나서 얘기 좀 했는데, 궁금하면 좀 해줄까?
학: 네, 좀 해주세요.
교: 올해 육사, 공사, 해사 각 1명씩 최종 합격한 거 들었지?
학: 네. 들었어요.
우리 학교 선배들, 그것도 불과 2년 전까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그 선배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교: 그럼 그 형들 얘기 좀 해줄게. 놀라지 마라.. 공사 합격한 형은 중학교 때까지 육상 선수하던 형이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공부 시작해서 지금 공사 합격한 거야.
학: 예? 그게 가능해요? 중학교 때까지 운동만 하다가 그게 가능할까요?
교: 그 형, 어제 만났는데 수능 수학 망쳐서 다른 데 못 갈 거 같다고 그냥 공사 가야 된다고 그러더라.
학: 예? 그냥 공사요?
교: 육사 합격한 형은 작년 선생님 동아리 장이었지?
학: 무슨 동아린데요?
교: 헬스 동아리
학: 아~이해되네요..
교: 헬스 동아리지만 실은 자기 관리 프로그램 실천하는 동아리가 더 맞겠다. 학생부도 멋지게 준비했지. 뭐든 다 열심히 했던 형이지.
학: 아. 좀 그렇네요. 운동도 잘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고..
교: 해사 합격한 형도 마찬가진데. 수능 2주 전까지 공사 간 형하고 둘이서 선생님이 다니는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했는데^^
학: 좀 어나더 레벨이네요..
교: 그럼 S대 1차 합격한 형들 중에 한 명 얘기해 줄까?
학: 네, 궁금해요. 다 해주면 안 돼요?
교: 아니, 한 명만 일단 해줄게. 내신이 약간 밀리는데 그 친구 소위 덕후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덕질이 장난 아닌데. 그 분야 학과에 지금 1차 됐거든.
학: 아. 그럼 덕질하면 되나요? 오타쿠 되면...
입시의 비밀: 절대평가 마인드
교: 비슷하지.. 근데 선생님이 너희들한테만 비법 좀 알려줄까?
학: 뭔데요? 어려운 거 말고 쉬운 거면 알려주세요.
고1 아이들의 솔직함이 귀엽습니다. '어려운 거 말고 쉬운 거.'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쉬운 길을 찾고 있네요^^
교: 진짜 쉬운데. 한 가지만 알려줄게. 두구 두구.... 너희들 수능 영어 상대평가야? 절대평가야?
학: 당연히 절대평가지요..
교: 그래 맞아.. 입시도, 또 인생도 모두 수능 영어처럼 절대평가라고 생각하면 아주 쉬워지지..
학: 예?
교: 하루아침에 너희들 그 형들처럼 할 수 있겠어? 운동하고 스케줄 관리하고 수능과 자체 시험은 물론 내신 준비도 함께 말이지?
학: 그건 좀 곤란합니다!
교: 잘하는 형들하고 비교하면 엄청 자존감 떨어지지? 그렇지만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너를 비교하는 건 쉽지? 그리고 해볼 만하지?
학: 그건 좀 쉽겠네요.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희망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교: 어제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뭐 했어?
학: 음...
교: 혹시 쇼츠 보다가 게임 좀 하다가 2시에 야식 먹은 건 아니지?
학: 헐.. 보셨어요?
교: 어제의 너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의 너란 그런 거지..
학: 새벽까지 게임하고 야식 먹고 그러지 말라고요?
교: 그럼, 하더라도 조금 줄여보자는 거지.
수능 영어가 알려준 것
요즘 수능 영어의 위상이 예전과 다릅니다. 소위 주요 과목에서 약간 밀리는 그런 분위기죠. 입시에서 수능 성적이 여전히 중요한데, 변별력이 있는 과목이 당연히 학생들에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영어는 국어에도 밀리고, 수학에도 밀리고, 탐구에도 밀리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간절함이 줄어서 섭섭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한편으론 마음이 더 좋기도 합니다. 수능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낮아지고 심지어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일까요?
바로 수능 영어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79점, 89점 받은 아이들은 너무 안타깝겠지만, 98점을 받던, 92점을 받던 차이가 없다 보니 아이들은 수능 영어 공부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다른 친구들의 성적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실력과 성적만을 기준으로 공부하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습니다. 남들과 비교할 시간에 오롯이 자신의 약점을 분석하고 보완하며 강점을 기준으로 전략을 짜면 되니까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운동을 하다가 공부를 시작한 아이는 기초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공부 기초를 쌓는 데 집중했습니다. 사관학교는 자체 시험이 있어 수능과 자체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는 주도적인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더욱이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검사와 체력 테스트를 함께 준비하기에 자신의 스케줄을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운동을 해야 되고, 자체 시험에 면접도 준비해야 되고, 그러면서 수능도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입시도, 인생도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남들과 경쟁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남들 보기에', '남 부럽지 않게'란 말을 은연중에 쓰고 있지 않나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절대평가 인생. 입시와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하루아침에 따라 하긴 어렵지만,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의 나를 만나는 건 가능합니다.
고1 아이들에게는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선배들처럼 하루아침에 될 수는 없지만, 오늘부터 하루하루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진다면 2년 후에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절대평가 입시와 인생 모두를 응원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가 아닙니다.
기준점을 바깥에 두고 남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안에 두고 나를 존중하느냐일 겁니다.
박웅현, 여덟단어 『자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