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가르치고 기르며 함께 성장하는, 아빠쌤 라이언입니다.

by 아빠쌤

갑작스러운 순간

며칠 전 오후, 갑작스럽게 생긴 교감 선생님의 특별 교육 시간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들도 급하게 잡힌 스케줄이라 모든 아이들에게 제때 알리지 못했고, 몇몇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농구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지정된 모임 장소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 방송을 듣지 못한 학생들이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그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아이가 제 앞을 지나가며 던진 말.

"시간 바뀐 거 있으면 빨리 알려주지. 짜증 나. 씨~"


순간, 저도 기분이 상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별로 화를 낼 일이 없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훈계가 아닌, 이해의 언어

그 아이를 잠시 불렀습니다.


"○○야,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선생님들 여기 서 계신데 앞으로 지나가면서 그런 말을 하면 여기 선생님들은 기분이 어떨까?"


순간 그 아이는 당황했지만 여전히 씩씩거렸습니다. 사실 저는 그 아이가 선생님들을 보지 못하고 실수로 혼잣말을 했길 바랐는데, 그 반응을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기분이 나쁜 건 알겠는데, 자초지종을 듣지도 못하고 그렇게 선생님들 앞으로 지나가면서 그런 험한 말을 하면 선생님들도 오해할 수 있겠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아이들이 나쁜 게 아니라, 언제나 문맥과 상황과 환경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요. 그래서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내가 아는 너는 지금 그런 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잠시 기분이 나빠서 선생님들이 오해하는 말을 실수로 한 거 맞지? 선생님은 그렇게 믿고 싶은데 어때?"


그제야 그 아이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 선생님들이 여기 계신 줄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교무실 문 앞에 선 아이

상황이 마무리되고 교육이 끝나고 제 수업도 모두 끝나 교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 아이가 제 옆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 아까 전에는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감정이 좀 격해져서 저도 모르게 말이 막 나온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진심이 묻어나는 사과였습니다.


"그래, ○○야. 선생님이 그때도 말했지만, 너 그냥 실수한 거라고 믿겠다고. 충분히 서로 이해한 것 같았는데 이렇게까지 찾아와서 사과를 하니까 내가 더 미안하네. 자, 우리 한번 안자. 이리 와, 샘이 한번 안아줄게."

저보다 큰 덩치의 아이를 안아주었더니 녀석이 훌쩍훌쩍거렸습니다.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교무실을 나가던 그 아이를 다시 한번 불러서 또 안아주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여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와, 멋지네요. 남자들의 포옹!"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오해의 순간이 이해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이해가 아이들에게는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웬만하면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듯이 그런 불편한 순간을 지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시 찾아오거나 다음 수업 때 더 부드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제 행동이 그 아이들에게 날 선 공격이 되지 않고, 위로가 되는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퇴근길, 어머니의 흐느낌

그날 퇴근길.

오랜만에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최근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일들로 인해 끝내 전화를 끊을 때 어머니의 흐느낌을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저 또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고 아내와 아이들과 아주 짧은 통화를 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평소하고 다른데?"

첫째의 물음이었습니다. 아니라고 말했더니 둘째가 다가왔습니다.

"아빠, 어디 아파? 통화할 때 뭔가 다른 것 같아서."


아내에게서 배운 게 있는데요. 아빠, 어른, 남자 그런 것 중요하지 않으니까 평소에 아이들한테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라고요. 그래서 둘째에게 말했습니다.


"응, 아빠가 지금 여기 마음이 좀 아파."


초코파이와 따뜻한 손

둘째가 다가오더니 제 가슴에 손을 살포시 올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응. 아빠 그랬구나. 마음 아프구나. 아빠, 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의 언어로, 아이의 방식대로의 위로가 제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둘째는 자기 방에 가더니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서 가지고 왔습니다.

"아빠, 이거 먹어. 마음이 좋아질 거야."

아이가 건넨 것은 둘째가 가장 아껴두고, 먹지 않던 초코파이였습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건넨 둘째를 보며 아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와, 우리 아이들 정말 잘 자라고 있구나.' 아빠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면 다른 친구의 마음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할 수 있다면 위로할 수도 있겠죠?

게임과 칭찬 사이에서

둘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더니 첫째가 다가왔습니다.


"아빠, 축구 게임 한판 어때?"

속으로 '역시 첫째는 대문자 T구나' 생각했습니다. 잠시 함께 축구 게임을 한판 하는데, 옆에서 제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야~ 우리 아빠 정말 잘한다. 슛 장난 아닌데?


난데없는 칭찬이 이어졌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렇게 칭찬하는 게 왜 그런지 알지? 자기의 방식대로 당신을 위로하고 있는 거야."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칭찬을 늘어놓던 첫째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게임을 하면서 칭찬을 건네던 첫째의 마음이 더욱 깊이 느껴졌습니다.


위로의 순환

학교에서 미안해하는 학생을 안아주었습니다. 이해한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었던 위로의 방식이었습니다. 집에서 첫째는 게임과 칭찬의 말로, 둘째는 가장 아끼는 초코파이와 따뜻한 손으로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집에서 받은 위로의 방식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서 '문제 학생'이 아니라 오직 '문제의 상황과 맥락'만 있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이해했던 방식으로, 집에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세계를 오가며

학교와 집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아이들과 학생들에게서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합니다.


진정한 위로는 기술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진정한 이해는 판단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도 돌아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살피고, 서로를 성장시키며,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나요.

그리고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나요.

위로를 위한 위로,
이해를 위한 이해는 없습니다.
다만 공감과 진심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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