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에게 딱 한 가지만 바꿔보세요.
안녕하세요, 라작가입니다.
오늘은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고등학생에 관한 이야기지만, 어느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모님도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참고로 이 글 속의 우성, 기계공학과는 설정된 내용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아이들을 만납니다.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고, 시간을 정말 많이 쓰는데…
성적은 그대로거나, 심지어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작년 제 반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진로도, 목표도 확실한 친구였어요.
의지도 있었고, 방향도 있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적은 눈에 띄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부모님,
대부분은 어머님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게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이의 적극성이 부모님의 열정에 가려질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아이는 어머님의 시원한 그늘을 벗어나지 않으려 합니다.
그늘은 시원하니까요. 편안하니까요.
그리고 이런 어머님들은 대부분 참 따뜻하고 선한 분들이세요.
아이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넘치고,
늘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시는 분들입니다.
그 자녀들 역시 대부분 참 착해요.
가이드를 잘 따르고, 순응하고,
어른의 말을 존중할 줄 아는 친구들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모자(母子) 관계를 마주할 때
더 조심스럽고 더 마음이 쓰입니다.
얼마 전, 작년 제 반이었던 한 친구의 어머님과 통화하게 되었습니다. 고3을 앞둔 2월, 조급한 시기이지요.
적응 중인 새 담임보다는 조금 더 편한 저를 찾으셨고,
현재 내신으로 수시에서 어느 대학의 기계공학과까지 도전할 수 있을지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마지막에 덧붙인 한 마디가 귀에 남았습니다.
“아이가요, ‘엄마가 내 내신으로 갈 수 있는 기계공학과 좀 알아봐줘’ 라고 하더라고요.”
분명 어머님의 궁금함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였지만, 저는 아이의 말에 먼저 마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년 동안 이 아이를 지켜본 선생님의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우성이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려고 애썼고,
스스로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 친구예요.”
“고2 생활을 이렇게 성실하게 보낸 친구는 드뭅니다.
어머님도 마찬가지세요. 아이의 말을 듣고, 고민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제가 본 어머님들 중 최고셨습니다.”
그러곤 이렇게 이어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열심히 하는 아이가 성적이 더디게 오를 때 가장 큰 원인은 아이가 ‘방향’을 결정하지 않고, 부모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제안을 드렸습니다.
“고3부터는 아이가 직접 찾아보고, 조사하고, 결정해보는 시간을 조금 더 넓혀주시면 어떨까요?”
“작은 것이라도 아이가 선택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선택을 무한히 칭찬하고, 인정해 주세요.
그래야 아이가 ‘주체적인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머님이 방향을 설정하고
아이가 그 방향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다면,
이제는 그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우성이는요, 어머님만큼 충분히 주도적이고 멋진 아이예요. 이제는 ‘따라가는 우성이’를 믿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우성이’를 믿어주셔야 해요.”
“필요하시면 제가 옆에서 도울게요. 그런데 정말 다행인 건, 이런 성실한 아이들은 결국 적극성을 찾아낸다는 점입니다.”
“그 적극성은, 부모님의 사랑과 기다림을 이해하면서
스스로 움트게 되어 있어요.”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아이의 ‘성적’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성적에 웃고, 성적에 울고, 성적 앞에서 고민하는
바로 그 아이를 사랑하는 거죠.
부모는 아이를 ‘당장’ 변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변하게 하는 사람이다.
—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서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