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파악하지 못하고 공시생활에 뛰어든 결과는 장수생이었다.
경시생(경찰공무원준비생) 5년 차에 접어든 나는, 이 바닥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자타공인 햇살 같은 아이였다.
스스로 글을 적어 고하기엔 좀 쑥스럽지만 나는 늘 얼굴에는 옅은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고, 덤으로 익살스러운 장난기와 재치덕에 주위 친구들에게 인기가 좀 있는 편이었다. 아리따운 외모가 아쉽게도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이성친구들에게는 그렇게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교우관계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좋았고, 사람들을 달래주는 게 좋았고, 사람들에게 챙김 받고 챙겨주는 게 좋았기에 인간이라는 동물에 염세를 느끼고 외딴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하나도 공감하지 못했던 나였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까지 -
올해로 나는 경찰시험을 준비한 지 4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 이면의 어둠으로 그을려졌다는 뜻이 아니라 많이 성장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내 속에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이면의 어둠을 마주한 후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일 듯하다.
예전엔 '물'이라고 하는 것은 돌멩이를 훤이 보여주는 계곡 물처럼 맑고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만이 '물'이라는 경이로운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는 편협한 삶의 방식과, 세상을 보는 시선에 갇혀있었다면 지금은 점점 속내가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닷속 물을 절대 표면만 봐서는 그 속의 투명함을 본질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라고 해야 할까?
내가 그동안 얼마나 단순하게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이 외롭고도 외롭고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터널 속 공간에서 불안하고도 불안한 공시생활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고, 이것을 빨리 알면 알수록 공부하는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요 근래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누구나 그렇듯이 나의 공시생활은 금방 끝날 줄 알았다. 몇 개월의 단기간합격은 아니더라도, 길어봐야 1년 반~2년이라고 생각했다. 2년 차 접어들었을 때도 죽상이었다. 벌써 장수생이라고, 햇수로는 3년 차임에 기암과 눈물을 토했더랬다. 햇수는 절대 세지 않는 장수생이 돼버릴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2년 정도 하고도 합격하지 못하면 금방 손 털고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그 한 문제차이로 떨어지니 빼도 박도 못한 채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린 것이다. 처음엔 태어난 사주팔자가 엿같아서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나는 진짜 지질히 운도 없다면서, 애당초 내가 원했던 직업들을 이루지 못할 거면 언감생심 꿈이나 꾸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왜 꿈은 꿨으며 결과는 항상 이렇게 좋지 않은 걸까.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잠들 때마다 원망했더랬다. 지레 먼저 장수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자기혐오에 빠져서 매일 우울한 기분 속에서 눈물 닦아내며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 소모를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안 했으니 뻔한 결과였건만.
'불필요한 에너지'를 빨리 찾아서 그곳에 힘을 쏟지 않는 능력이 나에겐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집중력은 있는 편이고 간이검사를 해도 집중력은 평균보다 높게 나온다. 그런데 한 가지 두 가지 일에 집중을 동시에 하려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다행히도 23년 초입의 문턱이지만 올해 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좀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은 터득한 것 같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나에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될 것들을 애초에 차단하는 거다. 정말 간편하고 속 후련한 방법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이토록 여태껏 몰랐던 거다. 바로 그 알량한 착한 아이 증후군 덕분에.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를 두려워하느라. 조금이라도 어두운 면을 들켰다가는 왠지 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될 거라는 무의식적 불안감에 빠져있었던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21년, 22년 나는 어떤 이유에서 정말 나조차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나의 어두운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준 적이 있다. 내면의 어둔 바닥을 한번 찍고 났더니, 그렇게 타인의 눈을 신경 썼던 나였는데, 이젠 그 강박에서 조금 벗어난듯한 느낌이 든다. 이젠 그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든 남들에게 하는 배려도 내가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까지만 하는 방법을 37세에 좀 알게 된 듯한 느낌이다.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고 그 정해진 시간에서 내가 내 감정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음, 이걸 글로 잘 표현하기엔 아직 나의 필력이 형편없음이 애달프다.
그러니까 내가 장수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1시간 집중을 하는 시간에 나는 여태껏 3-4가지를 신경 쓰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60분을 공부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고작 25분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남들은 1년 걸리는 시험은 나는 4년이 걸린다는 건 그냥 기정사실화된 결과였었던 거였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공부 말고 신경 쓰는 것들은 뭔지 분석을 해보았는데, 그건 전부 '타인'이었다. 스터디 조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고, 독서실 아르바이트하는 사장님이 짜증 나서였고, 나를 돌봐주지 않는 친구들이 섭섭해서였고, 하필 공시생으로 발들인지 1년이 지난 시점에 나타난 그 남자애가 야속해 서으나 나에게 상처 주는 그들에게조차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들과 연을 이어나가려 함이 결국 나를 사지로 몰아넣는 독이었음을 몰랐던 거였다. 그런 생활을 수해 반복한 결과는 타인으로 인해 나를 갉아먹고 내가 타인화가 되어 나 같지 않는 내가 너무나도 싫어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졌고 그럴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신경 쓰지 않으면 더 좋아질 리도, 더 나빠질 리도 없는 원래부터 제자리인 관계들에 내 것들을 잃으면서 까지 너무나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정말 정말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바보 멍청이 같은 생활을 하면서 공직자가 되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긴 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나는 꽤나 예민한 아이 었고, 착한 아이 증후군을 지독하게 앓고 있는 타인들의 먹잇감이었었다. 그리고 나는 타인 속에서 어울려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혼자서 조용히 생각정리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해와 같이 강렬한 빛보다는 어둠을 밝혀주는 달 같은 은은한 빛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타인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아이인 듯 보였으나, 내가 배려받고 싶었기에 먼저 배려해 주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것을 알게 되니, 이젠 나에게 무심했던 친구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예민해서 거리를 뒀던 친구들이 오히려 나보다도 더 세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와 -를 알게 되니 그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나 역시도 타인들에게서 이해가 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불필요한 에너지들을 차단하는 기술을 이제 좀 알 것 같다. 그리고 이 기술을 이번시험에 마음껏 사용해보려 한다. 결과는 23년 3월 25일에 알겠지만, 나는 꽤 좋은 예감이 든다.
2022년 12월 어느날 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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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3년 10월 2일 추석연휴의 끝에서 나는,
브런치 심사받을때 적었던 작가의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글을 꺼내어 조금 수정한다.
기대했던 23년 1차, 2차 모두 낙방하였다. 친구들에게 낙방소식을 전했고, 이상하게 주위친구들은 나에게 같은 이야기를 한마디씩 해주었다.
" 니 내년에는 붙겠다. 지금까지 낙방했을때 니 반응이랑 다르다 "
4명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공통점은 한문제로 떨어졌다, 문제가 쉬웠다, 문제가 너무어려웠다의 핑계를 대기보다는 지금 필기불합격인 나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말하고있다나.....
다시 나는 24년을 기대하면서, 아니 기대라기보다 나의 노력의 점수를 받을 준비를 하면서 공부해야겠지.
결론을 꼭 최종합격자라는 타이틀을 달고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