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식, 단체사진을 찍지 않았다.

by 제로섬

2022년부터는 정말 친구들과 연락도 잘 안 하고, 불러도 왠지 나가기가 싫어서 '회사취직'이라는 핑계를 대고(물론 거짓말이었다.) 모임에 잘 나가지 않았다. (물론, 정말 친한 친구들한테는 사정이야기를 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나갈 이유를 잘 몰랐다. 불필요한 시간들이라는 게 너무 느껴졌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돌아올 때면 그냥 막연히 헛헛한 느낌에 사무치는 게 싫었다. 다수의 존재속에서 소속을 느끼며 즐겁게 희희낙락 호호하며 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 때마다 내가 다시 한낱 하나임에 불과하다는 그 느낌이 너무나도 싫었다.


원래가 3-4명 정도의 소수의 만남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다수가 모일 때면 주도권인 아이들의 생활과 이야기만 늘어놓는 공간에서 어렸을 때부터 조용했던, 힘없던 아이들은 발언권이 주어졌을 때만 이야기하고, 그 조차 여전히 성인이 되어서도 이야기의 소재가 다 떨어졌을 때나 잠시 주목받아 화재의 전황용으로 사용되는 철없는 어른이들의 장난에 이용되는 게 보기 싫어서였다. 나는 여자임에도 아직 연락하고 있는 동창생들이 거의 남자아이들이라 약육강식의 세계가 좀 더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새부터 여자친구들과 와이프를 데리고 오는 모임에서는 거의 홍일점인 나를 은연중에 신경 쓰고 있는 그녀들이 느껴지고 또 그녀들로 인해서 나도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야 하는 게 피곤하게 다가와서 그냥 이성친구들의 모임에는 자연스럽게 나가지 않게 되었다. (브런치니까 말이지만, 이 중에 어떤 여자친구는 인스타 팔로우 부계정을 만들어서 내 인스타를 하루가 다르게 염탐하고 있는 걸 나에게 들킨 일도 있었다.)


이런 시기에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게 되면서, 자존감의 문제는 둘째치고 공부해야 하는 시간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서라도 정말 소수의 모임이 아닌 자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기에, 나는 어쩌다 주제넘게 비싼척하는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1명 제외 나머지 친구들은 아직 공시생인걸 모른다.) 그렇다 보니, 모임을 할 때마다 나를 찾아주던 친구들도 어느새부턴가 연락이 좀 잦아들었다. 오히려 좋긴 하지만, 조금 그들의 근황이 어떤지 궁금했더랬다. 카톡 사진으로 올라오는 그들의 귀여운 2세 사진들을 어두운 독서실에서 1000P 분량의 책위에서 보면서

'짜식들 잘 키우고 있네 시험합격만 하면 내가 예쁜 옷 꼭 사서 보내줘야지'

라는 생각은 하고서도 연락은 절대 먼저 하지 않는 생활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안녕이 궁금하면서도, 안부를 전하고 싶으면서도 - )


그러던 차에, 그날도 밤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동창생 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어~ 현우야"

" 야 달성아, 아니 다음 주에 철이 결혼한다고 너한테 청첩장 주고 싶다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내가 했다. 잠만 있어봐 철이 바까 줄게-"


" 어~ 달성아 내 철인데, 내가 니 연락처를 몰라서 이렇게 연락한다.

내 다음 주에 결혼식 한다고 애들 지금 만나서 한잔하고 있는데 니 연락이 잘 안 된다 해가지고, 이렇게 전화로 말한다 "


읭...? 사실 결혼식을 올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철이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같은 계원이어서 2주 정도 전쯤에 아빠카톡으로 철이의 청첩장을 봤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연락이 없길래 (인스타 DM도 있거니와, 폰 번호는 쉽게 알 수 있었을 건데) 이 친구도 같은 다수의 모임 속에서나 연락할 친구의 존재로 나를 여겼구나 생각하면서도 섭섭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 정도였기에-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해서 결혼식 갈 테니 청첩장 보내라고 할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요즘 나는 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혼자 조용히 침식하고 싶은 기분을 즐기려 하는 중이기에 (라고, 위로를 하면서 써 내려가본다) 인스타 메시지 창을 닫았던 기억이 있음을 묻어두고,


"알겠다 갈게. 야 결혼 축하한다. DM으로 청첩장 보내던가 현우한테 내 번호 받아서 카톡으로 좀 보내도 아빠랑 같이 갈게 축하한다~!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고 그날 보자~"


이렇게 전화통화를 끝으로 나는 아빠대신 엄마와 철이의 결혼식장에 참석했다





축의금을 전달하고, 경철이네 아저씨 아주머니와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식장으로 들어서려니 동창생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원래는 동창생들이 보여도 눈에 띄지 않게 축의금만 살짝 전달하고 올 심산이었다.

아 그런데, 왜 반가움에 주체할 줄 몰라하는 꼴 보기 싫은 내가 보이고 있는 걸까.


"야 띵똥아" " 야 네모야" "야 태권도" " 야 나무야"


내 눈에 먼저 동창들이 빠빠빠박 박혀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있던 엄마께도 소개해 줬다.


"엄마 얘는 누구고 ~얘는 누구야~"

"아 안녕하세요 어머니"

"네~반가워요"


그렇게 다행히 나는 엄마 때문에 어색할 뻔한 친구들의 만남을 좀 이겨낼 수 있었다.


"달성아 여기 우리 와이프 인사해라~"

" 아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나는 우리 엄마 소개해줬는데, 친구 녀석들은 다들 자기 인생동반자를 소개해줬다. 또 씁쓸했다.

그렇지만 정말 몇 년 만에 본 친구들도 나를 엄청 반갑게 맞이해 줘서 또 고맙기도 했다


"와 달성이 니 진짜 오랜만이네 "

" 야 너 거둘 이 아직 사귀나? "

" 어 달성아 니 진짜 오랜만이다 왜 안 보이니 쫌 나온나"

" ㅋㅋ 그래그래 이제 자주 보자"


그렇게 몇몇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엄마도 계원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 나를 소개해주셨다.

기억 저편으로 잊었던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오랜만에 뵌 느낌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렸을 적 나로 돌아간 느낌이 마냥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 아 달성이 니도 이제 시집가야지~"

" 달성이 니 진짜 몰라보겠다. 이래 있으니 어릴 때 얼굴을 아예 못 찾겠네"


별로 친하지 않은 친한 친구인데 안부정도 묻는 사이인 친구... 철이 덕분에 오랜만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반가움을 느끼고 세상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지인들과 연락을 하면서 살아야 함이 맞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한구석에선 또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자라나고 있었다.


때마침 꼴사운 놈 제이 군이 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제이 군이랑 나는 20대 후반 28쯤이었나?

서로 30을 목전에 둔 것이 불안했던지 정말 아주 작게 올라왔던 호감에 사귀자고 했다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닫고 3일 만에 얼른 정리했던 기억이 있는 친구다. (내 인스타 염탐하다가 들킨 누군가의 여자친구도 바로 제이 군의 여자친구, 아니 이제는 와이프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만의 특유의 부끄러움을 남에게 전담시키는 촐싹거림을 못 떨쳐낸거같아보였고, 아직도 어린 시절 유치함이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 무슨 응어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건지 보란 듯이 자기의 존재가 그곳에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인지 보란 듯 큰소리로 거기 참석한 동창생들 이름 하나하나 호명하며 돌아다니기 여념 없어 보였다. 바로 옆에 서있던 내 이름만 빼고- 남자 놈의 새끼가 말이다. 그 와이프 또한 나를 발견하고는 바로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는 게 아닌가? 아 도대체 그들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내가 어떤 이미지로 인식되었는지는 내 알바 아니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이런 자리에서 계속 만나야 하는 불편함은 달갑지 않다.


아 진짜 꼴사나워서. 정말 3일 만에 관계정리한 나를 다시 한번 무한칭찬을 해줬다. 작년 11월쯤에 결혼식도 올렸다길래 좀 놀랬긴 했다. 나에겐 어떤 연락도 없었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친구들에게서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 인스타를 통해서 이들의 결혼사진을 보게 되면서 결혼식을 올린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녀석과의 인연은 정말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더 알고 싶지도 않고 무슨 응어리가 있으면 풀어라는 말도 하기조차 싫다. 그냥 정말 손톱만큼의 에너지도 이제 불필요한 인간들에게 쓰고 싶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것도 아니다 좋은 에너지도 이 녀석에게서는 얻고 싶지도 않고 그냥 '무'존재로 남기고 싶다.


여하튼, 이래저리 정신없이 친구들하고 인사 나누고 엄마도 엄마 계원분들 만나서 뷔페가시고 났더니 홀연 다시 나 혼자 남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체사진 찍기까지는 어림잡아 20분 정도는 되어야 찍을 것 같아 보였다. 결혼식 참석은 사진이 증명한다는 명제를 익히 들어온 터라 프로참석러인 나는 모든 결혼식에 친하건 안 친하건 참석만 하면 사진은 다 남겼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남기기 싫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반가웠긴 했지만 5초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였고, 이 결혼식에서는 자주 연락할 것같이 느껴졌어도 다음 동창생 누군가의 대소사가 있기 전까지는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들 자신의 반려자들을 만나서, 혹은 자신의 전문직업에 종사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잘 보였는데, 나는 회사 다니고 있다는 뻥만 치고 독서실로 향해야만 한다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 나와의 갭차이가 다시 한번 인식되는 그 느낌에 혼자 조용히 식장 뒤에서 박수한번 더 쳐주고 그 자리를 조용히 나섰다.




결혼식장을 뒤로하고 집에 거의 도착할 때 즈음에 임경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공부 중인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친구다.


" 어 달성아 - 니 어머니랑 뷔페 먹나? "

" 어 임경아 내 오늘 일이 있어서 먼저 나왔다"

" 아 맞나? 아니 친구들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연지갈비 가자고 해서 니도 같이 가자고 전화했지"

" 아 고마워 ㅋㅋ 맛있게 먹고 온나"


사진이라도 그냥 한 장 남기고 올걸, 공부도 팽개쳐놓고 하루를 쓸 심산으로 결혼식 참석했으면서.. 하는 후회도 마음속 저면에서 올라오긴 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각자의 사정은 다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나는 군중 속에 있기도 싫거니와, 나의 안부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중에 철이가 사진첩을 보고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섭섭함을 느끼려면 1주일 전이 아니라 청첩장이 나왔을 때 바로 보냈겠지'라는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무덤덤히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삼겹살을 구워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선 내방으로 돌아와서 맛깔나게 낮잠을 청하고, 저녁은 반신욕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후회와 공허함은 뒤로하고 -

이제 또 나는 독서실로 향해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러서 합격해야만 하는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꿈을 이루는 1교시 : 자기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