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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관

엔트로피 -제러미 리프킨-

by 폴리래티스

독서조각



"로크로 인해 현대인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계몽시대 이래 개인의 생 존 의미와 목표는 오직 생산과 소비로 전락해버렸다. 인간의 필요와 열 망, 꿈과 소망은 모두 물질적 이익의 추구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해리포터의 등장인물인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 덤블도어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우리가 죽음과 어둠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미지의 영역에 속해서 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본능이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발현된다. 호기심은 모험과 탐구로 이어지고 진보와 발전에 도움이 된다.


세상은 개개인의 삶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은 필연적으로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는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리듬은 정치와 경제의 전 지구적인 그물망에서 압력이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방출된 결과라고 말했다. 역사의 동인에 관한 그의 이러한 견해에는 “위대한 개인”들의 영향이 들어갈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폴 케네디-


위화의 소설인 인생은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중국의 항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대약진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 개인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친숙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도 같은 내용이다. 미국의 현대사에 검프의 인생도 노출된다. Kkk단 앨비스프레슬리, 인종차별. 베트남전쟁, 반전시위, 달착륙, 핑퐁외교 등등 역사적 사건들이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물론 영화에서는 영화적 요소로 검프의 말과 행동이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표현했다.)


영화속 주인공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도 시대정신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어떤 시대나 그 시대가 가지는 세계관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의 세계관에 속해 그 틀에 맞춰서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재 세계관인지 알아야 무엇이 잘못됐으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제러미 리프킨의 책 “엔트로피”에서 이 부분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본성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은 “왜” 라는 질문과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기준이 되는 틀을 만들어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다.


현대인들은 지나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암울한 산업혁명의 시대가 저물었음에도 아직도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기를 원하고, 1년에 한 두번 휴가를 떠나기를 원한다. 원한다는 것은 아직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쓰고 제대로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다는 의미다.


우리의 조상인 수렵 채취인들은 일주일에 10~15시간정도 밖에 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몇 주에서 몇 달간 쉬기도 했다. 남은 시간은 오로지 놀이나 문화생활에 사용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우리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동이 필수라는 의미다. 세상은 진보하고 있지만 결국 더 많은 시간을 사용했을 때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헤시오도스는 철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의 자유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는 철기시대의 도래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다.


철기시대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낮에는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약탈과 침입자에 시달렸다. 결국 그들은 모여서 집단을 이룰 수밖에 없었고, 집단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에 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이때 우리 인류의 두 번째 세계관이 도래한다. 그리스 인들은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순환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창조한 세상은 결국 쇠락을 맞게 되고, 신이 세상을 다시 태초의 상태로 회복시킨다고 믿었다.


중세시대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우리를 지배했다. 중요한 것은 원죄였다. 인간은 운명을 스스로 개선할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통제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개인적인 목표나, 개선의지가 부족했다. 인간은 순례자의 삶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등장한 세계관이 바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관이다. 현대에 만들어졌냐고?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관은 400년전에 시작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밀, 신속, 정확이다. 뉴턴의 역학 법칙은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는데 도움을 줬고, 우리는 우주의 정교함을 우리 삶에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행성의 움직임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맞물려 돌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아귀가 맞지 않는 것과 결함을 제거하는데 노력했다.


기계론적 가치관은 프랜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의 공동작품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고대 그리스 세계관을 주장하는 바는 거창하지만 실질적으로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베이컨은 “왜”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했다. 그가 만든 신기관론은 현대 실용주의자의 원조다.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증명하고, 사실만 얘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베이컨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수학자 데카르트는 세상을 수학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움직이는 물체로 바꿨다. 중요한 것은 공간과 위치라고 주장했다. 16화 파스칼의 내기에서 잠깐 살펴봤지만 자연을 수학으로 풀이하는 것은 자연의 움직임을 풀어내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본능에 따른 것이다.


데카르트의 주장은 뉴턴의 고전역학이 등장하고 큰 힘을 얻었다. 자연을 수학으로 풀려던 그에게 좋은 도구가 등장한 것이다. 기계론적 패러다임은 이제 천하무적이 되었다. 자연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믿었다.


이제 기계론적 세계관은 자연 뿐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경제에도 그런 시도가 있었고 그 중 한 사람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다.




투자조각


제러미 리프킨은 그리스적 세계관 >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엔트로피적 세계관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투자자적 관점에서 현재 경제학이 갖는 한계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현대 경제학을 통해서 주식시장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다.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만든 모형으로 투자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형에는 결정적 결함이 있다. 바로 투자 시장의 참여자가 합리적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활동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자기 이익추구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이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막아서는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단 한 번만 등장한다. 이후 등장한 많은 경제학 이론들은 애덤 스미스의 뜻을 왜곡했다.


어쨌든 현재 경제학 모형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델이라고 가정한 채 만들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는 맞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방식이 항상 옳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옳다 라는 의미는 정의나 도덕이 아니라 그것이 오로지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인가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쉽게 말하자면 A라는 방식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더 나은 방법이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B나 C를 선택한다. B와 C라는 방식이 통계적으로 분명히 이익보다 손실이 큰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판단을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 역시 현재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기계론적 세계관을 통해서 도출된 경제학에서의 인간 모델이 오히려 기계론적 세계관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세상이 잘 맞물려 돌아간다고 생각하기에 결함이나 이물질을 톱니바퀴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톱니바퀴의 부품이 되고자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집단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안전을 도모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로 예를 들자면 집단의 선택을 받은 종목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올라간다. 이는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는 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을 따르는 것은 안전을 도모 함인데 비싼 가격을 지불해 안전에서 멀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모순은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비싼 값을 지불했음에도 더 비싼 값에 구매해주는 다른 참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높은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가격은 떨어져서 적정가격에 수렴한다. 너무 낮은 가격이 되면 다시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들은 매수자로 변하고 가격은 올라 적정가격이 된다. 이것이 효율적 시장가설이다.


하지만 투자자라면 알 것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집단은 가격이 올랐을 때 더 많이 매수에 참여하고, 가격에 떨어지면 오히려 매도자가 된다.


왜 기계론적 세계관을 사는 사람들이 기계론적 경제학과 모순되는 행동을 할까? 앞서 말했지만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움직임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집단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다.


귀스타브 르봉은 자신의 저서 군중심리에서 다음과 말했다.


“개인은 조직된 군중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 문명의 계단에서 몇 단계는 더 내려간다. 혼자였다면 교양인이었을지 모르나 군중이 되면 야만인, 즉 본능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군중 속의 개인은 충동적이고 난폭하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원시인처럼 열광하며 때로는 용맹하게 나서기도 한다. 그런 개인은 독립된 개인에게라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말과 이미지에 쉽게 휘둘리고, 자신의 명백한 이익을 해치면서 본래의 습관과 상반되게 행동하는 등 원시인에 가까운 경향을 보인다”


단지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개인이었을 때 할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16화 파스칼의 내기에서 우주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미래를 예측하려던 시도가 무산됐던 이유가 피드백이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집단 역시 마찬가지다. 행성도 삼체가 되면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피드백을 주고받는 행성이 많아질수록 경우의수도 많아진다.


“기계론이 세계관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려면 무엇보다도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제러미 리프킨-


기계론적 세계관이 물리적 한계를 맞은 이유와 유사하게 경제학에서도 한계를 만난 것은 시장 참여자인 집단의 피드백이론을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투자시장에서 엄청난 영향을 줄만한 집단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효율적시장가설은 평소에 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집단이 형성됐을 때 시장의 반대 방향으로 베팅하면 안 된다. 집단이 옳든 옳지 않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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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러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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