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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물로 배우는 투자

지식의 최전선 -앤서니 그레일링-

by 폴리래티스

독서조각


“나일강은 예측과 통제가 쉬웠던 반면, 황허강은 중국의 슬픔으로 묘사될 만큼 잔인했다. 툭하면 엄청난 홍수가 토사로 쌓인 높은 제방을 뚫고 밀려들어 와서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땅은 물론이거니와 사람과 가축마저 수몰시켰고 농경지는 두꺼운 진흙층으로 뒤덮이곤 했다.”




불의 발견


인류가 진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도구의 사용이다. 인류는 더 나은 삶과 생존을 위해 좋은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지능이 높아지면 활동량 또한 늘어난다. 활동량이 늘어나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만들게 된다. 그러면서 손기술이 좋아지고, 이는 더 높은 지능으로 이어졌다.


인류는 처음 포식자가 남긴 동물의 사체를 먹었을 것이다. 주로 영양분이 높은 골수를 빼먹었다. 뼈에 붙은 남은 살점은 말려먹거나 소금에 절여 먹었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그러다 가끔 자연적으로 불이 발생했을 경우 인류는 우연한 자연의 산물을 얻었을 것이다.


고기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점점 부패하는 시체의 살점이다. 날고기는 불에 가열해서 조리했을 때 안전이나 맛이 더 낫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에서 인간은 익힌 고기나, 소화에 도움 되는 구운 나물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은 음식뿐만 아니라 더 단단한 나무를 얻을 수 있게 했고 인간의 힘으로 쪼갤 수 없던 돌을 쪼갤 수 있도록 만들어 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 덕분에 우연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생존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불은 신이 내려주는 사람만 얻을 수 있었다.


이때 불을 다룰 수 있는 인류가 등장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170만 년 전부터 불을 피우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통제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것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진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아주 흔하고 누구나 쉽게 다루는 것이 불이지만, 당시에는 불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능력만으로도 종의 생존과 번영에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주는 능력이었다.





도구를 제작하고 불을 통제할 수 있는 인류는 생존의 가능성이 크게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자 함께 생활하는 집단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수렵과 채집만으로 비대해진 집단의 체급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인류는 필연적으로 정착을 시도했을 것이다.


사실 한 곳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행위를 우리는 인류의 진보로 보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수렵, 채집을 하던 인류는 정착해서 살던 인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


동시대에 살았던 정착민은 수렵, 채집인보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 정착민들은 집단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동 불균형과 사회 계급화가 심해지고, 자유와 평등이 줄어들게 되고, 전염병이 보다 많이 창궐했다.


노동시간도 크게 늘어났고(수렵, 채집인의 노동 시간은 현대인의 노동시간보다 적다),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땅이 필요했으므로 집단 간의 경쟁과 갈등도 늘어났다. 자원을 두고 전쟁이 일어나 많은 정착민이 희생됐을 것이다.


집단은 부족으로, 부족은 도시로, 도시는 점차 국가로 확대됐을 것이다. 가장 큰 집단이 만들어지는 곳은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책 총균쇠에서 말하는 비옥한 초승달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서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농업과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와 시리아 동부), 레반트(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 그리고 이집트 나일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초승달 모양의 비옥한 땅을 포함한다.


이곳은 최초의 농경사회가 시작된 문명의 발상지다. 그리고 곧 황허강과 나일강 상류주변에도 문명사회가 발생했다. 최초의 문명사회의 특징은 강이다. 농업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물이었다.


관개수로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 인류는 물을 얻기 쉬운 강 근처에서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었다.


강은 수시로 범람했고,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자연이 가져다준 불은 우연의 산물로 인류에 이득이 되었다. 하지만 물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만큼 인류에 큰 위험이었다. 대신 불을 통제했던 종이 엄청난 번영을 이뤘듯, 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불의 발견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하지만 인류가 물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수천 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다.


“나일강은 예측과 통제가 쉬웠던 반면, 황허강은 중국의 슬픔으로 묘사될 만큼 잔인했다. 툭하면 엄청난 홍수가 토사로 쌓인 높은 제방을 뚫고 밀려들어 와서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땅은 물론이거니와 사람과 가축마저 수몰시켰고 농경지는 두꺼운 진흙층으로 뒤덮이곤 했다.”


황허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그 주변에 수천 개의 정착지가 발견되는 것은 그만큼 황허강이 주는 이점이 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황허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쌓인 부드러운 황토는 엄청난 비옥해서 사람들을 자꾸 다시 불러들였다.


인류는 불과 물을 통제하기 전까지 생존에 직결되는 많은 것들을 우연에 의해서 얻고 잃었다. 이런 과정을 수천년이나 겪고 나서야 이를 통제할 수 있게 됐고, (아직까지도 물과 불에 의한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지만) 이는 인류의 큰 발전으로 이어졌다.




투자조각




통제의 이분법


나의 투자 철학을 완성시켜 준 것은 다름 아닌 스토아학파의 철학이었다. 스토아학파의 가르침 중에서 내게 가장 큰 울림을 받은 부분은 통제의 이분법이다.


통제의 이분법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https://brunch.co.kr/@2fab0ada6d0c424/52


이 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인생에서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만사를 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구별하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과 내가 통제하고 내릴 수 있는 결정들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시장을 “미스터 마켓”이라고 불렀는데, 시장이 마치 조울증 걸린 사람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시장예측은 불가능하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움직임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시장의 움직임, 그리고 시장에 주는 수익을 통제하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그것이 투자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불과 투자


가끔씩 찾아오는 상승장은 마치 자연이 주는 불과 같은 것이다. 인류는 우연히 발생한 불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맛과 소화에 좋은 익힌 고기와, 나물, 그리고 단단한 나무와 쪼개진 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운이다. 불을 통제할 수 없는 인류가 만약 이런 우연을 만나기 위해 일생동안 불만 찾아다녔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겠는가?


시장에 참여하는 많은 투자자는 가끔 찾아오는 상승장에 취한다. 그리고 상승장의 좋았던 경험을 행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찾아다닌다.


우연히 발생한 불과 상승장을 찾아다닌다고 발견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류가 결국 불을 통제했듯이 투자자도 상승장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상승장을 불처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참여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장에 참여자로 남아있어야 상승장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는 악순환의 고리 탓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소 투자를 하지 않는다. > 시장이 상승장에 초입에 들어서면서 몇몇 성공담이 들려온다. > 시장이 상승장에 들어서면서 많은 투자자가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 뒤늦게 투자에 참여하지만 아는 것이 없어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종목에 투자한다. > 이미 많이 오른 종목은 상승장이 끝나면서 폭락한다. > 많은 돈을 잃은 사람들은 다시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시장을 떠난다 > 위의 상황이 반복된다.


시장의 참여자로 남아있는 사람이 결국 상승장의 이익도 얻어갈 수 있다. 장기투자는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시장의 짧은 시장의 상승 구간에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수익은 크게 줄어든다.


우리는 시장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기에 장기보유를 통해 시장의 참여자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승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상승장을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우연히 주어지는 불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인내다.




상승장의 조건


다음은 물이다. 인류에게 중요했던 물을 투자시장에 비유하자면 엄청난 유동성이다. 유동성이 많은 곳에 투자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유동성은 주식시장을 부양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유동성이 빠지면, 유동성으로 상승한 시장은 여지없이 폭락한다. 유동성이 가져다준 풍요로움은 어느새 잔인한 학살자로 변모한다.


불규칙적인 강의 범람에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또다시 강 주변으로 모여서 살 수밖에 없었던 인류처럼, 유동성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또 잔인하게 학살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인류는 관개수로를 발명해 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물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투자자도 유동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사이클은 예측이 불가능하면서도 예측이 가능한 역설적인 영역이다. 시장의 사이클에는 꼭 필요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발동되면 시장은 상승 사이클을, 조건이 사라지면 하락 사이클을 탄다.


그렇다면 조건을 갖췄다고 무조건 상승장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승장을 만든 조건이 사라지면 하락장은 반드시 찾아온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예측이 불가능한 상승장이 아니다. 상승장의 수익을 얻는 방법은 불에서 배웠듯 인내하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투자자가 주목할 점은 하락장을 만드는 사이클이다. 하락장을 만드는 가장 큰 조건은 상승장은 만든 조건의 부재다. 상승장을 만드는 조건은 유동성과 레버리지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 중앙정부가 금리를 엄청나게 낮추거나, 아예 제로금리로 만들자 전 세계에는 엄청난 유동성이 쏟아졌다. 이는 시장의 급격한 상승장을 만들게 됐다. 유동성이 상승장을 만들면 부수적으로 레버리지가 증가한다. 팬데믹이 만든 상승장에 수많은 레버리지 상품과, 빚투가 유행한 이유다.


유동성과 레버리지는 같은 의미로도 쓰이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다. 많은 유동성이 공급되면 시장은 크게 오르는데, 이때 많은 투자자들이 더 큰 수익을 노리고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레버리지는 시장의 상승을 더욱 가파르게 만드는 촉진제가 된다.


하락장의 조건


여기서 중요한 하락장의 조건은 유동성의 감소와 과도한 레버리지다. 레버리지는 유동성이 공급됐을 때는 시장의 촉진제 역할을 하지만, 유동성이 감소한 시장에서는 독약이 된다. 2020년 팬데믹이 만든 버블장은 2021년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으로 무너진 이유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되는 것은 유동성 공급은 중앙은행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완화 정책도 있고, 혁신적인 기술이 나타났을 때 투자자금이 모이면서 형성되기도 한다. 이 경우 유동성 감소는 금리처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데, 정부의 정책은 완화에서 긴축으로 돌아서는 시점을 확인해야 하고, 기술발전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은 상업화에 주목해야 한다.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미래를 책임질 이 기술에 수많은 자금이 투자될 것이다. 대개 이런 현상은 뉴노멀이라 불리며 이번에는 다르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이런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만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 이런 시장의 심리는 무리한 투자로 이어지고 레버리지가 만들어진다. 돈이 없어서 부채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많이 오른 자산에 미리 투자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초기 투자자의 수익률을 따라갈 수 있도록 2배, 3배, 5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 등장한다.


이렇게 시장이 과열될 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술은 대단히 혁신적이지만 이 기술로 언제 돈을 벌 수 있을까? 회사의 주가는 이미 이 모든 것을 반영한 상태인데, 언제쯤 주가에 반영된 만큼 현실적으로 돈을 벌까?라는 생각이다.


이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투자한 상태에서 더 많은 투자자와 자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주식이 올랐기 때문에 매수했는데, 주가가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면 더 살 이유가 없다. 이제 그들은 팔기 시작할 것이다.


유동성을 공급했던 주체의 심리가 팔자로 변하면 유동성은 급감하고, 주가는 폭락한다. 반대로 많은 투자를 받은 기업이 기술을 통해 흑자로 전환한다면 더 큰 상승을 불러올 수도 있다.


또 기술에 대한 정부의 규제, 도덕적 우려,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오너 리스크 등이 있다.


불과 물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은 인류는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가며 이것들을 통제하는 기술을 얻었다. 투자자도 불과 물을 통제하는 것처럼 상승장과 하락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지식의 최전선 -앤서니 그레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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