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복리
우리는 보통 지금의 선택이 바로 다음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뿌리에는 마르코프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미래의 상태가 오직 현재의 상태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이 가정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의 논리이기도 하다.
과거의 데이터는 이미 현재에 충분히 요약되어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을 정확히 분석하기만 하면 다음 단계를 계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 관점 안에서는 모든 행위가 즉각적인 효용으로 평가받는다. 독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당장 나의 판단력이 정교해졌는지, 혹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일어났는지를 서둘러 묻게 된다.
운동,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급함에 시달린다. 우리가 이러한 조급함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미 마르코프적 세계관에 깊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실제 삶은 마르코프적 모델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정보만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결정들이 너무나 많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길을 택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기저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는 과거를 현재로 매끄럽게 압축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경험들은 무의식 속으로 사라져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기억속에서 사라진다.
당장에는 아무런 의미도, 행동의 동기도 부여하지 못하던 기억의 조각들이 시간이 흐른 뒤 특정 조건과 만나는 순간 갑자기 강력한 판단의 기준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비마르코프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현재 상태가 동일하더라도 과거에 축적된 해석의 흔적이 다르면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과거 어느 지점에 읽었던 제텔카스텐이라는 책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고 감명받은 즉시 펜을 들지 않았다. 내가 그 책을 접한 것은 대략 2년 전의 일이다.
2년전에 읽은 책이 지금 글의 소재가 계기는 최근 시작한 AI 공부였다. 인공지능의 설계를 들여다보던 중, 나는 AI가 마르코프 가설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래의 상태가 오직 현재의 상태에만 의존한다는 이 가설을 접하는 순간, 나는 인간과 AI의 사고 구조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을 포착했다. 인공지능은 현재의 데이터값이 주어지면 즉각적으로 다음 결과값을 계산해낸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현재의 데이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2년 전 읽은 책의 파편이 오늘날의 공부와 충돌하며 예기치 못한 불꽃을 일으키듯,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비마르코프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거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단순히 강렬한 충격을 주거나, 억지로 암기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기억들은 대개 그 발생 순간에는 지극히 평범하거나 모호하다.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문장, 마무리되지 않은 질문, 무심코 지나친 생각들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불려오고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이러한 기억들은 단순한 정보로 남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바뀐다. 무엇을 선택하라고 직접 명령하기보다,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해야 할 일은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이 생각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일이다.
일종의 지식의 복리다. 드라마틱한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지만 우리도 모르는 새 눈덩이 만큼 불어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독서와 메모는 바로 이 여지를 만드는 가장 구체적인 행위다. 책을 읽으며 형성된 전이해는 머릿속에 머물지만, 기록되지 않은 생각은 대개 다시 호출되지 못한 채 휘발된다. 여기서 메모는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한 보존 도구가 아니라, 생각이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장치가 된다.
훌륭한 문장을 수동적으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왜 내 사고를 건드렸는지, 그것이 나의 기존 생각과 어떤 마찰을 일으켰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파편적이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 다른 맥락과 충돌할 때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비마르코프적 사고 구조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시스템이 바로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이다.
루만은 이 방식을 통해 평생 수십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써냈는데, 그 핵심은 메모를 단순히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 가능한 파트너로 만드는 데 있다.
제텔카스텐에서 한 장의 메모는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아이디어를 담으며, 고정된 주제별 분류나 시간 순서에 갇히지 않는다. 대신 메모와 메모 사이의 연결이 모든 구조를 결정한다.
이는 뇌의 신경망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특정 메모가 다른 맥락의 메모와 연결되는 순간, 과거의 생각은 소멸하는 대신 정기기억으로 살아남아 현재의 사고에 개입한다.
제텔카스텐의 진정한 위력은 지식의 복리가 완성되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초기에는 메모를 채워넣는 수고로움만 존재할 뿐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메모의 밀도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새로운 생각은 더 이상 외부의 책이 아니라 내 내부의 메모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내가 남긴 질문이 현재의 내가 읽은 문장과 결합하여, 저자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제3의 통찰을 낳는 것이다.
이는 기억의 관리가 아니라 사고 구조 자체를 외부화하여 설계하는 작업이다. 루만이 자신의 메모 상자를 두고 나보다 더 똑똑하다고 말한 이유는, 이 시스템이 비마르코프적인 방식으로 과거의 모든 맥락을 현재의 사고에 실시간으로 투사해주기 때문이다.
마르코프적 세계관에 매몰된 이들에게 이러한 과정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상태 변화나 가시적인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마르코프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독서와 메모는 미래의 해석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지금 당장 효용이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정의할 수 없기에 미래에 더 크게 쓰일 가능성이 남는다. 제텔카스텐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더 풍요로운 사고의 선택지를 상속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충분히 쌓인 뒤, 같은 상황에서도 남들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마르코프적 사고가 만들어낸 복리의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