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했어, 고마워~

-과거의 나에 대한 감사함

by 은효

“우리 동네로 이사 오세요. 정말 좋아요.”


이사를 계획하는 직장동료나 지인이 있으면 내가 늘 하는 소리다.


“어디 사는데요?”


그러면 난 주절주절 우리 동네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강북구 우이동 쪽에 OO여대 아시죠? 그 맞은편에 솔밭공원이라고 소나무가 아주 많은 공원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바로 옆에 OO아파트라고 저층 아파트가 있는데, 저는 거기 살아요. 아마도 서울 시내에서 집값이 가장 쌀 걸요. 단독주택도 많고, 평수 좋은 예쁜 빌라도 많이 있어요. 공기 좋고, 북한산 전경을 한눈에 볼 수도 있지요. 겨울 눈 덮인 북한산의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입니다. 여름에 우이동 계곡이랑 백련사 계곡은 또 얼마나 시원하게요. 여름에 따로 멀리 갈 필요가 없어요. 도시락 싸서 돗자리 하나 메고 조금만 걸으면 계곡에 닿아요. 아이들 놀이천국이죠. 어른들도 발 담그고 있으면 너무 좋고요.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경전철이 연결되어 있어 시내로 나가는 것도 편리해요.”


상대가 끊지 않으면 내 설명은 더 이어지지만 대부분 이쯤에서 끝이 난다. 전철이 아니고 '경전철’ 이 말에 우리 동네는 바로 서울에서 별 볼 일 없는 외곽지역으로 낙인이 찍혀버린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와 학원 이야기로 접어들면 더 할 말이 빈약해지는데, 나는 명품학교 삼각산 재미난 학교를 당당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좀 가면 쌍문동에 ‘OO고’라고 서울대를 제법 보내는 학교가 있다고 얼버무리며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짓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들에게 우리 마을과 학교를 설명한다고 이사를 오지는 않을 거야.’라고 마을과 학교에 대한 설명에 꼬리를 내린 나를 변명을 하곤 한다. 물론 간혹 우리 마을과 학교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면 마을 장터 이야기며 학교에서 아이들이 지내는 이야기까지 주절주절 나의 사설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정말 살고 싶은 동네라는 대답을 끌어내기도 한다. 주말에 한번 놀러 와보겠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아직 한 명도 이사 유치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나는 이렇게, 일부의 사람들이 정말 살고 싶은 동네이지만 바로 이사를 결정하지는 못하는 동네, 주말에 한 번쯤 놀러만 와보고 싶은 동네로, 6년 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사를 결정했다. 무지했던 것일까? 무모했던 것일까?


베란다 앞에 뻗어 나온 소나무의 전경이 마음에 든다며 바로 계약을 한 우리 집은 그 소나무로 인해 일 년 내내 햇볕을 잘 볼 수 없지만, 나는 “자기야~ 별장에 온 것 같지 않아?”라며 관리사무소로 소나무 가지를 쳐달라고 전화를 하려는 남편의 휴대폰을 빼앗는다.


다른 지역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 뜀틀 넘듯 살짝 올랐다 내려앉는 눈치 없는 집값으로 다른 동네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축소었지만, “난 이제 이사를 간다면, 시골로 가서 마당 넓은 시골집 하나 사서 살 거야. 아니면 이 동네 쭉 살던지.”라고 말하며 애써 가볍게 무시해 주신다.


난 이런 내가 좋다. 역세권, 학군, 재개발 호재. 이런 거 거들떠보지 않고, 내 눈에 들어오는 동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집을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었던 나. 비록 한 번씩 다른 동네의 집값을 떠올리며 부러움의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지만, 곧 고개를 힘차게 내저으며 ‘아냐, 이건 정상이 아니야.’하며 바로 정신 차리는 나.


봄날 벚꽃 흩날려 눈처럼 쌓인 골목길을 걸으며, 더운 여름 챙모자를 눌러쓰고 둘레길을 걸어 텃밭을 오가며, 가을비 촉촉이 내리는 솔밭공원을 산책하며, 겨울 눈 덮인 북한산을 바라보며,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이 동네로 굳이 집을 사서 이사를 온 순수했던 나에게 “잘 했어. 고마워~”라고 가만히 속삭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