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한강을 다녀왔다. 나는 종종 집에서부터 걸어서 한강까지 다녀오곤 한다. 편도로 40분 정도 걸리는 길을 오전 9시 즈음 출발했다. 가는 길은 새벽의 서늘함이 남아있었는지 괜찮았는데 돌아올 때는 날이 뜨거워 힘들었다. 중간에 땀으로 범벅이 될 것 같아서 근처 패스트푸드점(카페는 연 곳이 보이지 않았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몸을 좀 식히다 일어났다. 당분간은 한강을 보고 싶다면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물가를 좋아한다. 강, 호수, 바다와 같은 것 말이다. 전역 후 부모님 댁에서 지낼 때도 집 근처 시민공원의 호숫가에 자주 산책을 나가곤 했다. 물은 매일이 다르다. 어떤 날은 흙탕물이 되어 있기도 하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거울처럼 세상이 반사되어 보이기도 한다. 날씨에 따라 파도는 잔잔한 파동이기도 하고, 세상을 삼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근원은 물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몸속 양수에서 삶을 시작한다. 진화적으로도 그렇다, 생명체는 바다에서 시작되었음은 이견이 없다. 그래서 육지 생물은 결국 고향을 벗어난 이민자와 같다. 경쟁이 없는 곳을 피해 아메리칸드림처럼 일종의 “랜드 드림”을 꿈꾸며 올라온 이들의 후예.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이다.
이방인들은 그들이 새로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공간에 고향의 일부를 가져오곤 한다. 가구들을 익숙한 것들로 꾸미기도 하고, 차이나타운처럼 아예 이방인들끼리 고향 자체를 가져오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인간도 그렇다. 인간은 바다를 몸에 가져왔다. 몸의 대부분은 물이며, 꽤나 높은 농도의 염류를 포함한다. 마치 바다처럼. 한 명 한 명은 각자의 바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바다는 무엇일까. 고향 하면 떠오르는 것은 계절에 따라 그리고 벼의 성장 상태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탁 트인 논과 축사의 소들. 여름이면 극성을 부렸던 파리. 한 시간에 한 번씩 오면서 시간표도 없고 시계도 없었던 주황색 시내버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두고 온 그 시절의 인간관계들. 귀뚜라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 무엇 하나 가지고 올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가져온 바다는 없는 셈이다. 어쩌면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이 바다를 가져오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고향이, 그리운 것들이 결핍되어 있기에. 그 그리운 것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기는 해도. 그러나 기차를 타고 3시간가량 달려 고향에 가도 그 결핍이 채워지는 것 같지는 않다. 내 고향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내 바다는 과거이며 지금은 메마른 듯하다. 그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소중한 것들을 핥으며 그리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바다가 있는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의 바다에 대해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그리움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알싸하게 맛 좋은 안주가 되는 법이니까.
20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