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by 온점

“존재한다.” 그렇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불확정성의 원리. 그것에 의하면 우리는 미립자의 운동 상태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미립자를 관측하는 행위는 곧 미립자에게 무언가를 반사시켜 그 반사된 무언가를 인지한다는 것이고, 그 반사의 순간 미립자의 상태는 바뀌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관측인 것이고, 의미의 변질을 필연적으로 일으킨다. 물론 크고 러프한 말을 할 때는 그 오차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나 우리가 무언가 세밀하고 구체적인 내면의 어떤 것을 설명하려 할 때는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5평 자취방에서 직접 튀긴 닭똥집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아마 사랑이었을 것이다. 얼큰히 취해 있어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아가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랑받아 마땅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를 또한 사랑하고 싶다고. 그렇게 내가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하는 ‘사랑한다’는 말 또한 같은 의미일까 봐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한다’는 말과 내가 말하는 ‘사랑한다’는 말이 다른 의미일까 봐 두렵다면서.


그래서 “존재한다”라고 하기로 했다. 나는 너에게 존재한다. 너는 나에게 존재한다. 너는 지금 존재한다. 사랑한다는 흔한 표현을 대신해서. 양자역학에서 말한 불확정성의 원리를 이유로 우리는 전자의 위치를 표현할 때 ‘전자구름’이라는 전자가 존재할 확률이 높은 공간의 범주를 구름처럼 표시하는 표현법을 사용한다. 우리는 결코 언어로는 온전히 전달될 수 없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만의 의미의 구름을 만들었다. 둘 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로 확률의 울타리를 세웠다.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존재할 수 있었다.


사실 연인 사이에 둘 만 아는 은어를 만드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다. 어찌 보면 뻔한 연애의 레퍼토리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녀는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기도 했지만,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녀의 존재는 존재했지만,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를 떠나보냈다. 결국 그녀는 나의 존재를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곧 나는 그녀의 부재 또한 고통임을 깨닫게 되었다. 존재도, 부재도 고통인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렁이는 피부가 약해 인간의 체온으로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지렁이가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렁이는 인간의 손에 올라타고, 피부로서 그/그녀를 마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런 관계는 결국 지렁이를 죽여버리지 않을까?


존재는, 그러니까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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