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케아 협탁을 샀다. 당근마켓을 통해 합정역 3번 출구로 나가 10000원을 주고 중고로 구매했다. 협탁은 미리 판매자가 공지한대로 청소를 잘못 했는 지 얼룩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렴 어때’하고 생각했다.
나는 많은 물건들을 침대 머리맡에 두는 습관이 있다. 풀어놓은 시계, 핸드폰, 양말, 먹다 남은 초콜릿, 어제 읽던 책, 지갑, 마스크 등을 말이다. 원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래도 양말을 사람 머리 두는 곳에 두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 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물건들을 둘 만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벽에는 벽이 아닌 벽지에 고정되는 송곳 같은 벽걸이를 활용해서 작은 찬장을 만들었고, 이번에는 협탁을 샀다. 2층으로 되어 있고, 침대보다 살짝 낮으며 쇠로 되어 있는 검정색 이케아 협탁. 아래층에는 멀티탭 콘센트와 홈 오디오 재생에 쓰는 공기계를 두고 위층에는 정말로 자주 두는 물건들을 올려 놓는다. 안경, 시계, 안경 닦이 같은 것들.
내 집은 다섯 평이다. 좁고, 계단 두 개쯤 내려가는 일명 “반의반의반지하”이다. 창문은 작고 옆 건물 때문에 낮에도 채광이 좋지 않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어둡거나, 형광등을 키고 살았다. 그러다 순간, 내가 엉망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파리가 날아다니고, 설거지감은 쌓여 있고, 빨래통에 빨래는 가득하면서 이미 마른 빨래는 걷지도 않았으며, 벽은 창백했고, 쾌쾌한 냄새가 나는데다, 화장실에는 곰팡이가 펴 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바꾸어 보려고 이것저것을 많이 했다. 캔들 워머를 사서 향을 풍기는 동시에 낮에 어둡긴 해도 분위기 있는 공간을 만들고, 벽에는 좋아하는 영화를 유화로 그린 엽서들을 걸어놓았다. 곰팡이는 각 잡고 전부 없앴다. (그럼에도 종종 다시 피어 오른다.) 빨래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에 하는 것으로 스스로 약속했다. 너무 딱딱했던 침대에는 푹신한 토퍼를 깔았고, 예전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플라스틱 싸구려 침대 프레임을 가리고자 침대 스커트를 사서 씌웠다. 최근에는 본가에 있던 스피커와 공기계를 가져와서 홈 오디오를 설치했다. 덕분에 집에서는 항상 재즈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중 하나가 협탁이었다. 침대에 두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작은 공간.
문제가 뭐냐 하면 이것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취향이라는 것이다. 하루 종이 음악이 흐르는 것도, 저 향이 나는 양키 캔들도, 머리맡의 양말을 싫어하던 것도, 딱딱한 매트리스를 불편해 하던 것도. 물론 나도 그 필요를 느껴서 여러 가지를 집에 추가한 것이기는 하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누군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한 달에 한 번쯤 보는 친구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원한다면 나랑 자줄 수도 있다고. 자기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그녀에게 1시간을 줄 테니 이 집에 있는 네 물건을 모두 챙겨서 나가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1시간은 커녕 그녀는 10분도 되지 않고 짐을 싸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옷, 양말, 속옷, 생리대, 탐폰, 그리고 화장실 하수구에 쌓인 머리카락을 남겨 두고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사랑할 만한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그녀는 자기의 꿈 중 하나가 노래가 항상 흘러나오는 집에서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제 좁은 공간에 그녀가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소파만 놓으면 아마 완성일 것이다.
이별을 할 때 남겨지는 이들이 있고 떠나가는 이들이 있다. 어떤 경우는 그것이 명확한 반면 어떤 경우는 둘 다 떠나가기도 하고, 둘 다 남겨지기도 한다고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남겨지는 쪽이었다. 내 공간에 유배되어서. 무엇을 하던, 무엇을 보던, 무엇을 만지던 추억이 떠오르는 감옥에 갇혀서.
지금은 괜찮다. 많이 괜찮아졌다. 단지,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무의식이 집을 그녀의 취향으로 채우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렴 어때. 집이 더 살기 좋아졌다면 그걸로 된 거지
2022.6.29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