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벗고 웃는 방법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넣으러 갔던 열 여섯 살의 가을, 지금은 내 모교가 된 고등학교의 진로 담당 선생은 원서를 넣으러 온 학생들에게 학업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나 또한 그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름의 미소를 애써 띄우고.
그 자리에 아버지와 함께 갔었다. 아버지께서는 이야기를 듣는 내 모습을 보시곤 함부로 웃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비웃거나 얕잡아 보는 표정처럼 보인다고. 나는 그때 내 얼굴이 어땠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기를 쓰고 미소를 지으려 했던 것은 기억난다. 나름대로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가 무섭다. 이는 아주 오래된 공포다.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다. 내가 싫어하는 수많은 나 중 하나이다. 못생긴 나. 못생긴 것을 넘어서 혐오스럽게 생긴 내 모습. 타인의 눈에 그렇게 비칠 것을 무서워한다. 못생김을 넘어서 내 표정이, 눈빛이 불쾌감을 주는 것이 무섭다. 인간은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이나 타인의 눈 없이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하기가 어려우며 나의 외적인 모습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1월 30일부로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었다. 12월부터 일했던 화상 수업 회사에서도 이제 수업할 때 마스크를 벗는다. 열한 살에서 열세 살에 불과한 아이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는다. 자리에 앉아있는 250분간 카메라가 나의 얼굴을, 표정을 촬영하고 녹화한다. 누군가는 수업을 하면서 웃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에게 컴플레인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표정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캠에 나오는 내 모습은 보통 무표정이고 딱딱하고, 무언가를 말할 때는 입이 과하게 튀어나온다. 억지로 웃어 보아도 아버지가 했던 말이 여전히 기억 한편에 자리한다.
날 그렇게 보지 마. 최선을 다해서 웃고 있는 거란다. 나를 싫어하지 마렴. 싫더라도 부모님께 이야기하지는 말아주렴. 그냥 저렇게밖에 웃지 못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 주렴. 같이 웃어주렴. 조금이라도 착각할 수 있도록. 부디.
다음 달까지 일하고 일을 그만둘 예정이다. 피어나는 아이들의 수많은 찬란함을 엿볼 수 있었지만 내게는 맞지 않는 일 같다. 어쩌면 또 도망치는 것이다. 그럴듯한 핑계를 나열하며.
2023.1.30.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