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았어요 그래도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 특히 타인의 죽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조심한다. 어린 시절 뉴스에서 자연재해, 사고 등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이 나올 때 사망자 수가 많지 않은 것을 보고 ‘다행이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면 뉴스를 보는 나에게는 숫자 1이었을 것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이다. 감히 사람의 죽음을 수치화 시키는 세상에게 경멸을 느낀다. 나도 언젠가 그 통계 안에 들어가게 될 거다. 사망자 수에 더해진 숫자 1이 될 것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나에게 죽음은 그저 끝냄이다. 무서운 일이다. 의식이 끊어지고, 아마 고통이 동반될 것이다. 고통 없는 죽을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내가 고통스럽지 않더라도 타인을 분명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이다. 그래서 사이렌을 울리며 다급히 달려가는 구급차를 보면 부디 아무도 고통받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한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버터에 토스트를 굽고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다. 때로는 계란 프라이를 해서 토스트 위에 올리고 타임을 뿌려 먹는다. 9월 14일의 공연을 위해 기타를 조금 연습하고 샤워를 한다. 담배를 한 대 핀다. 집 앞 카페에 간다. 드립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담배를 한 대 더 핀다. 노트북을 연다. 무언가를 쓴다. 주어진 주제에 대한 글이기도 하고, 그 날 드는 생각이기도 하고, 쓰고 있던 단편 소설을 이어서 쓰기도 한다.
“뭐 하고 지내?”라는 질문이 두렵다. 길을 잃었다. 목표는 언젠가부터 생존이 되었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버겁다. 표류 중이다.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울 때가 많다. 관통하는 메타포를 발견하고,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의 인생을 떠올리고, 메시지를 담으려 애쓴다. 아직도 잘 쓰지는 못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광기’가 부족한 걸 수도 있다.
죽음이 삶의 멈춤이라면 삶이란 무엇인가? 만으로 23세인 나의 23년 하고도 5개월간의 삶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작은 것들에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해하다, 그다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깨닫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벌리고, 감당하려 애쓰고, 짊어지려 애쓰다, 포기하고 짊어질 수 있는 것 만을 등에 지고 남은 것은 놓고 간다. 그것은 내가 저지른 죄악이기도 하고, 한 때 내게 가장 소중했던 것이기도 하다.
초기 불교에서 말하길, 삶이란 곧 고(苦)이다. 좁은 의미로는 고통 그 자체이며, 넒은 의미로는 단순한 불만족을 포함한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기에 행복하다면 행복이 사라질 것이기에 그것은 고이고, 평온하다면 평온은 깨질 것이기에 고이며, 고통스럽다면 그것으로 고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 탐(貪), 진(嗔), 치(癡)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탐욕, 화,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탐진치에서 벗어나면 열반에 들어 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재수없는 사람이다. 연의 글에서 나는 ‘Y대에 다니는 자기계발서는 전부 쓰레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참 재수없게 들린다. 결국 나도 어리석은 사람인데,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인데 아닌 척한다. 고민이 있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인생사를 초월한 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살아가는 사람’처럼 조언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그 지식의 얕음은 드러날 것인데. 사실 참 별로인 사람인데, 스스로를 누구보다 미워하면서 자꾸 있는 체한다. 겸손해야 한다고 되새기며 겸손하지 못하다. 결국 탐, 진, 치에 푹 빠진 어리석은 존재다.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살면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어 왔고,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죽음이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기에 현상유지를 택한다. 가끔은 도움도 요청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알지 못해 그 마저도 하지 못한다. 그저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죽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은 상태가 엄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아무것도 쓰지 못할 지경이 된다면 내가 그대에게 해 줬던 말을 그대로 해 주길 바란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해 준다.
내가 죽는다면 내 만년필을 덕에게 남긴다. 닌텐도 스위치를 나의 친형에게 남긴다. 캔들워머와 양키 캔들과 팔찌를 연에게 남긴다. 기타를 혁에게 남긴다. 귀걸이와 재떨이를 옥에게 남긴다. 시계를 여동생에게 남긴다. 토퍼를 신에게 남긴다. 이슬아 수필집을 카인드맨 커피 사장님께 남긴다. 벨트를 현에게 남긴다. 노트북과 채 쓰지 못한 글들은 은에게 남긴다. 김애란의 단편집을 서에게 남긴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잡지를 오려낸 것은 민에게 남긴다. 테블릿을 진에게 남긴다. 지갑을 중에게 남긴다. 사과가 되지 못하겠지만, 사과의 말을 원에게 남긴다. 동양철학에 대한 책을 K에게 남긴다. 부모님께는 죄송스러워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 그 외에 자기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가져가라.
서두를 반복하자면,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당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의 앞에서 언급하지 마라. 내색하지 마라. 나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많은 사람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한 순간에 남기는 짓은 하지 않으려 한다. 괜한 걱정 어린 연락이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 하지 마라. 부탁이다. 아무도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을 사랑한다.
2022.9.3 씀
죽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