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계획하고 치열하게 실행하라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흘러가 버렸다. 2월 21일부터 시작한 육아휴직은 아이들 진학 준비에 전념하면서 1주가 소요되었고, 불행히도 입학식에 맞춰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확진된 탓에 격리된 채 다시 또 1주일을 허비했다. 준이의 첫 초등학교 등교, 민이의 첫 유치원 등원을 시작으로 두 녀석 모두 적응을 시키는 데에는 아직까지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고 보니 육아휴직의 진정한 삶을 시작한 지는 3주 정도 된 셈이다.
이렇게 직장을 떠나 온전하게 육아를 전담하는 삶을 살아본 소회가 있다면 하루가 정말. 진짜로 빠르다는 것. 그러므로 아무 계획 없이 본연에 삶을 그저 살아만 낸다면 모처럼 얻은 휴직기간은 아무런 결실도 없이 그저 헛헛하게 지나가 버릴게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각해왔던 이런저런 일들에 좌충우돌하면서 세상에는 직장 생활 이외에도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실감하였다.
고심 끝에 결정한 육아휴직에 앞서 생각해 둔 것들이 있다. 대부분이 직장생활이라는 틀에 박힌 생활패턴 탓에 늘 바라기만 했을 뿐 시도조차 못하고 마음속으로 희망했던 일들이다.
육아휴직이란 본래 그 목적이 분명하므로 아이들 케어를 전담하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진학 초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이들의 일상에 녹아들어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동시에 깊이를 더함으로써 친밀감을 돈독히 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하여 '최선의 양육'이라는 당연한 목적을 목표리스트에서 제외해보니 나의 육아휴직은 크게 다섯 개의 부가 목표와 두 개의 이벤트가 계획되어 있었다.
1) 출간
2) 목공
3) 입주
4) 운동
5) 사업준비
I. 전반기 ▷ 아이들 여름방학 : 제주도 보름 살기
II. 하반기 ▷ 아이들 겨울방학 : 지구 남반구 한 달 살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아직까지도 내 욕심만 앞세워 저 많은걸 짧은 일 년 동안 다 할 수 있을지 의아할 정도로 거창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출발점으로부터 한 달 정도 진행된 시점인 지금, 저 위의 목표리스트의 모든 항목들은 각각 제대로 잘 진행되고 있지는 않을지언정, 어떻게든 그 발걸음을 떼긴 하였다.
육아휴직의 삶이란 겉에서 보기엔 누구나 해야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양육에 초점을 둔 얄팍한 삶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잘하기엔 쉽지 않고, 그 하루는 개인적으로 직장생활보다 두 배 이상 바쁘고 힘들다.
때문에 앞서 소회를 밝힌 것처럼 현실에 안주해서 그저 살다 보면 일 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게 분명해 보였기에, 오랜 시간 NIKE가 주창해 온 그들의 슬로건대로『Just Do It』그냥 해버린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내 경우에서 삶이란 결국 어떻게든 동력을 얻어 움직여내지 않으면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렇게라도 시작을 해낸 스스로가 대견하고 만족스럽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무도 내 목표리스트에 대해서 '안물안궁'¹ 하겠지만 나 스스로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간단히 저 리스트가 작성된 개연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출간
내 브런치 첫 번 째 글에서 수줍게 밝힌 바 있는 것으로 살면서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항목이랄까? 글재주도 없고 깜냥도 안 되는 주제에 언젠가는 정말로 책 한 권은 꼭 한 번 출간해 보고 싶었다. 내 삶이 지나가더라도 이 세상에 가치 있게 남길 수 있는 무언가로 책을 선택한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녹여내어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세상에 내놓고 혹시라도 누군가 그 글을 통하여 용기를 얻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다만, 소재가 없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무언가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된 경험이나 요령이 있어야 할 텐데 지극히 평범했던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러다가 육아휴직 직전 이른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 '이거다!' 싶었던 것이 지금 써 내려가고 있는 이 글이다.
아직은 낯설고 많은 이들이 해보지 못한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궁금증들을 내 경험으로 답을 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이제 막 시작하는 나로서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 궁금해하는 일반적인 질문이나 특별히 가려운 부분들을 생생하게 전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유튜브다 인스타다 해서 요즘은 꼭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셀럽 혹은 인플루언서 등등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매체도 다양해졌다. 어딘가 좀 까칠하고 억지스러운 성향이 있는 나는 '남들 다하는 인플루언서 나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심보도 내심 작용한 것 같다.
2) 목공
어려서부터 공부보다는 손으로 만지작 거리는데 더 흥미가 있었다. 만들기 그리기 등의 예체능이 국영수보다는 오히려 적성에 가까웠다고 지금까지도 나는 믿고 있다.
문제는 색약이었던 내가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불리한 환경에서 성취를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드라마란 있을 리 없다며 일치감치 그쪽으로의 도전 자체를 손절했다는 데에 있다.
훗날에서야 알게 된 사실로, 만화가 이현세 교수님 역시 색약이라는 핸디캡을 지니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낸 끝에 그 불리함이 치명적 결함이 될 수도 있었던 분야에서 전설적인 성취를 이루어 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나라는 인간이 성공한 인물과 대비하여 얼마만큼 본질적으로 나약하며 나태한 인간이었는지를 스스로 마주하며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여담을 살짝 꺼내어 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뜬금없이 목공이 튀어나오게 된 계기를 잠시 설명하자면 그 배경이 이러하다.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그저 시류에 따라 인문계를 거쳐 공과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운에 이끌려서였는지 끝끝내 자동차 산업의 디자인 센터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때 같은 실로 입사하게 된 동기인 형이 언제부터인가 목공을 배우러 공방에 다닌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실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행보였던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려면 회사를 다니고 작가가 되려면 작가가 되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일차원적 생각에 갇혀있던 나로서는 직장생활과 병행하여 제2의 무언가를 계획하기는커녕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성격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형은 결국 목공을 1년 동안 배우면서 실력을 갈고닦았고 나름대로 전시회, 작품전도 열면서 업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머지않아 회사에서 시행한 희망퇴직을 신청하여 목돈을 마련하였고 지금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나에게 그 형은 그만큼 짧고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목공을 배우고 실제로 제작하는 형을 보면서 나는 기껏 내 손재주만 믿고, 내가 여건이 안되어서 그렇지 나도 본격적으로 하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식의 쓸데없는 핑계와 변명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설움이 쌓이고 남아있었던 탓인지 육아휴직으로 평범한 직장생활의 일상과는 다른 루틴을 짤 수 있게 되자 가장 먼저 떠오른 자기 계발 아이템이 바로 목공이었다.
그리고 이는 운이 좋게도 나의 목표리스트 5) 와도 연관 지을 수 있었다.
3) 입주
나는 나이 서른에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마당에 또래 중 돈 꽤나 모아 둔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 싶었다. 하지만 주변을 보니 저마다 각자의 요령으로 다들 성실하게 모아 둔 통장 하나씩이 있는 게 아닌가. 정말 탕자처럼 월급은 받는 대로 족족 써댔고 미래에 대하여 이렇게나 무책임하고 불성실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친구들과 비교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특이한 예로 군대 시절 해외 전쟁에 파병을 지원하여 파병 수당으로 돈을 모아 둔 후배도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용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용돈이 더 이상 용돈이 아닌 자산 수준으로까지 부풀린 재주를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정석으로 과외를 통하여 용돈을 직접 벌고 그중 일부는 적금마저 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하다못해 알바로 등록금과 자기 용돈마저 충당하는 친구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신분이었을 때 부터.. 하지만 나는 대학시절 등록금은 부모님께서 대주시는 걸 당연하다 생각했고, 용돈은 아껴 쓴다고 아껴 썼지만 늘 부족하기만 했다. 재산은 결혼 후부터 모으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월급마저 늘 부족해서 카드값을 메우기 바빴으니 돌이켜보면 정말 대학 때부터 사회 초년까지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던 청춘이었다.
한 번의 이직을 통하여 원하던 자동차 회사에서 정말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 청혼했고 결혼을 준비했지만, 결혼이란 그저 로맨틱하기만 한 단어만은 아니었다. 함께 살 보금자리며 살림살이 등등에 한 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닌 만큼, 어느 정도는 준비가 필요한 것인데, 이게 두 사람 사이의 사랑과 믿음만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정말 순진한 바보였다.
하는 수 없이 결혼의 시작부터 부끄럽게도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와서 준비가 된 다음 결혼을 하기에는 결혼적령기에 있었던 그녀의 시간만 축내게 하는 도저히 해서는 안될 일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준다는 그녀에게도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에게는 이기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복잡한 고민과 걱정 끝에 나는 나만 생각한 뻔뻔한 결혼을 하였고 그때부터 경제와 자산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없는 형편에 과분한 아내를 맞이하여 고군분투하였고 일에 열정이 남달랐던 와이프와 맞벌이로 조금씩 가세를 펼쳐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인생의 세 번의 기회 중 하나가 또 찾아온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먼저 찾아온 기회는 아내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결혼 2년 차에 재개발구역에 있는 허름한 빌라를 빚을 지고 구입하여 낡은 동네에서 4년 정도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투자가 10년째 되는 올해 드디어 입주를 하게 된 것이다.
10년은 정말로 긴 시간이었다. 전세살이로 옮겨 산 집만 네 번의 이사를 거쳐 드디어 다섯 번째에 어엿한 내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 온 만큼 제대로 갖추고 들어가고 싶었다. 인테리어부터 각종 소품이며 가전 가구까지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채워 넣고 싶었다.
그러한 일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행하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고 퇴근 후에는 어린 두 아들을 케어하기도 바쁜데, 입주 관련 세부사항들을 지금 진행해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런 준비까지 하기란 만족할 만큼 잘 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렇다고 입주 준비를 제대로 하고자 육아휴직을 쓰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육아휴직을 하게 된 이 기회에 입주 준비에도 더욱 세심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4) 운동
모든 결혼한 남성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가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에는 정말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쪘다. 술도 꽤 자주, 많이 마시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술배가 그렇게 심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 나는 5~10kg 정도 체중이 늘었다. 문제는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돌아가려면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노력도 너무나 단편적인 데다가 성의마저 부족한 탓도 한몫했다. 그래도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 회사 점심시간에 배드민턴을 치는 것이었다. 배드민턴은 운동량이 꽤 되어서 40분 정도 시합을 하면 녹초가 되는 아주 격한 운동이다. 그 덕에 체중을 5kg 정도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이 탓인가? 체중은 줄였지만, 무릎이 나갔다. 언제부턴가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으면 찡~하니 예리한 통증이 무릎 안쪽 깊은 곳에서 느껴졌다. 병원에 갔더니 '반월상 연골판 파열'이라고 한다. 배가 나와서 운동을 하니 살은 빠지는데 건강을 해친다. 그래서 쉬면 다시 살이 찐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가장 타협이 되는 운동은 조깅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너무 몸을 막 쓴 탓에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조깅하는 것조차 무릎이나 발목 등등에 무리가 가긴 한다. 정말 이대로 괜찮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도 사람한테 가장 좋은 운동이라는 빠르게 걷기는 내 성격과 전혀 맞지를 않는다. 그래서 조깅을 조심히 하기로 타협했다.
그렇게 시작한 조깅을 지금은 꽤 즐기고 있다. 조깅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 Strava를 활용 : 꼭 Strava 가 아니어도 좋다. Samsung Health 나 Apple Watch의 활용도 좋다.
어쨌는 나는 지인의 추천으로 알고 쓰게 된 Strava의 무료 Version을 사용한다.
Follower라고는 강제로 내가 Follow 한 아내를 빼고는, 추천해 준 형과 내가 추천해 준
이웃 동생 두 명뿐이지만 나의 다짐에 의한 결과를 쌓고 기록하고 모아 두고 모니터링
하는 것 차제로도 동기부여가 되고 꾸준함을 이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 조깅을 할 때에는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 원래도 이어폰을 곧잘 쓰지는 않긴 하지만 TV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조깅 장면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맞춰 달리는 것이 공식처럼 묘사되고 있고 그게 또 나름대로
멋있어 보인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이어폰을 끼지 않고 바람소리나 주변에 백색소음을 들으
면서 달리는 것이 더 재미있고 운치가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이 앞선다.
중요한 건 나는 역시나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이라서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을 할 때면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반면에 그냥 뛰다 보면 일단 나 스스로가 관리를 하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들면서 스스로 대견해지는
것이 나름 기분이 좋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브런치에 쓸 글의 소재나 좋은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도대체 내 글에 좋은 문장이 있기는 한 건지.. 착각도 정도가 지나친 게 틀림없지만..)
-. 조깅을 하면 정말로 상쾌한 기분이 든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들기도 하지만 정해놓은 코스를 완주
하고 나면 그 상쾌함은 배가된다. 또한 조깅을 할 때 드는 상쾌함이 머리를 맑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일
상에 찌들어 굳어버린 사고의 순환을 좀 트여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엉뚱하고 재밌는 생각마저 든다. 이를
테면 머리에 헬멧을 쓰고 고프로를 달고 내가 지금 조깅을 할 때 보고 있는 이 싱그러운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 유튜브에 올려 공유하고 싶다던가.. 하는 나만 재밌는 생각. 또는 그 상쾌함에 센치해져서 약간 시적인
문장이 떠오르면 아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게 쌓이고 쌓여 이렇게 겁도 없이 브런치에 아무 글이나
끄적여대기 시작하는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인생 뭐 있나? 다방면으로 즐기고 만족
하며 살면 그만인 것을.
5) 사업준비
어쩌면 아이들 케어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이 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우리는 일단 어엿한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제1순위 목표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고 그 끝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 끝에 다다르기 전에 또는 내가 정하는 그 끝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막막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부 다는 아니어도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의 대다수는 그렇다. 하지만 그 끝을 위해서 예행연습을 해 볼 기회는 존재하지 않고 고민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시간만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 다다라있는 게 우리네 직장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주변 선배들의 끝을 보며 이렇게나 시건방진 결론을 멋대로 맺어버렸다.
뭐. 남들을 볼 것도 없겠다. 다름 아닌 나 역시도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너무나도 의존해있는 게 사실이다. 내 직장을 스스로 고를 수 있다 하는 능력자들도 결국은 '직장'이라는 것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런 그들도 조금은 도도하게 자기의 길을 펼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이직 정도다. 비하하자는 건 아니다. 그리고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언급한 의미에서 육아휴직 중인 나는 그전에 늘 고민하고 걱정했던 은퇴 직후에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것에 가까운 그 느낌을 육아휴직의 시작과 함께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보았고 그 감정은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대로, '직장생활의 끝에 대비하기 위한 예행연습을 해 볼 기회가 없다' 하였는데, 조금은 시기상조이긴 하나 육아휴직이야 말로 내가 직장 생활을 끝마쳤을 때, 또는 어떠한 이유로 직장을 잃거나 나왔을 때, 과연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연습해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선 지금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공방은 은퇴 후 사업으로 이어갈 수 있는 좋은 Item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답에 적어 넣을 선택지 하나는 마련한 셈이다.
주변에 사업을 하시는 지인이 있다면 고민 상담만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가까운 지인이라면 그분의 사업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를 통해 좋은 계기나 기회로 전환할 수 도 있겠다.
내 경우에는 장인어른께서 하시는 무역 관련 사업이 그런 것 중 하나다. 방금 이 얘기를 읽으신 독자 중 어떤 분은, 역시나 피붙이로서 비빌 구석이 있는 놈이라 팔자 좋게 육아휴직이나 하고 은퇴 후가 이러네 저러네 떠들어 댈 수 있지. 라는 비아냥을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뭐라 하건, 믿던 말던 나는 장인어른께서 사업을 하지 않으셨고 주변에 비빌 구석이 없었더라도 육아휴직을 썼을 테고, 막상 육아휴직으로 아이들 케어와 산재해 있던 우리 가족의 일을 직접 떠 앉아 보니 이건 도무지 직장생활과 병행해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가족사에서 올해 나의 육아휴직은 반드시 필요한 시기였고 시기적절하게 좋은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충분히 만족한다.
어쨌든 두 번 다시없을 이 기회에 나는 장인어른께 청하여 그분의 사업은 어떤 일인지, 또 일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얻었고, 조금씩 배움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일부만 공개하자면 장인어른께서는 목재 수출입 관련 사업을 하신다. 목재를 다루는 일을 사업으로 하게 된다면 목공을 통하여 나무를 재료로써 다루고 느끼는 기술과 더 나아가 원재료에 가치를 더해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은 분명히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목표리스트 2) 번과 5) 번을 상호 연관 있다 말하였다.
어쨌든 누구의 사업을 떠나서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삶과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아주 간단하게라도 적어 놓고 보면, 그와 똑같은 것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려본다거나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추진력이 붙게 된다.
정리도 잘되어 계획했던 것을 한동안 무심코 잊고 있다가 타이밍을 놓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당최 저 많은 야심 찬 계획들을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어떻게 제대로 해낼 수 있을는지 의구심부터 앞서긴 한다. 너무 의욕만 앞선 탓에 터무니없이 벌려놓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인생에 다시없을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을 한번 더 상기해보면 망설이는 건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결론의 반복이다.
그래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다.
모처럼 얻은 1년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채워가며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으로 물들이기에도 모자라다.
¹안물안궁 : '안물어보고 안궁금하다' 의 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