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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차 전자회사 직장인의 생존이야기

정퇴가 좋을까? 명퇴가 좋을까?

by 늘부장

10월 초, 회사 게시판에 명예퇴직 공지가 떴다. 만 50세 이상 직원 대상으로 3년 치 연봉에 자녀 1명당 대학학자금 2년 치를 준다는 조건. 예전에도 몇 번 올라왔던 내용이라 늘 부장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올해 3월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월급이 이미 10% 줄었고, 내년에 또 10% 줄어든다. 이번에 명퇴하면 10%만 깎인 상태에서 2년 치 연봉을 받을 수 있으니 계산상 나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동기 6명 중 4명이 이미 명퇴 신청을 했고, 점심 먹고 입사 동기 몇 명과 커피 마시며 얘기 나누다 보니 늘 부장도 이번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1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혼자 내리긴 쉽지 않았다. 퇴근 후 아내와 상의하기로 했다.


저녁 먹으면서 아내에게 슬쩍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 명퇴 조건이 괜찮은데, 나도 신청하고 싶은데.”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큰돈 받는 것도 좋지만, 그 후에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 클 거야. 차라리 정년까지 다니는 게 낫지 않아?” 예상과 다른 아내의 답변이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자식들은 곧 대학 졸업하고 자기 길 찾아갈 테지만, 아내는 퇴직 후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다.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노후의 삶이 고달파진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했기에 아내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명퇴와 정년퇴직을 다시 꼼꼼히 비교해 봤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도 명퇴하면 내가 전액 부담해야 하지만, 정년퇴직까지 다니면 회사와 절반씩 부담하니 오히려 정년퇴직이 금액적으로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팀장과 면담하면서 “명퇴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요즘은 회사가 강제로 퇴직시키는 시대도 아니고, 따라서 팀장도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팀장은 아마 이미 급여가 줄어든 늘 부장이 회사에 남아도 회사 손익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고 대신 자녀 많고 급여 높은 직원들이 명퇴를 선택하는 게 회사 손익 관점에서 더 이득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늘 부장은 가족, 특히 아내와의 퇴직 후 알콩달콩 삶을 위해 정년퇴직을 선택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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