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인간으로서 불을 켜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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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 시절,
그저 먹고, 자고, 싸고, 칭얼대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그 존재를 인간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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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 보행을 하며,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어도,
존재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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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회화 과정 속에서
성장해 가며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
여전히 존재였던 대상이 어느 순간,
지금까지 스쳐간 그 모든 시간들을 모두어
어엿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발현시키는 시점이 있다.
마치 어둠 가운데 있었기에
대상에 대한 존재인식은 있었으나,
명확한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그러나 순간 밝혀지는 가로등빛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는 느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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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두 번을 경험했고,
이번 주에 세 번째 경험을 했다.
존재가 스스로 등을 밝혀
어엿하고 자주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체를 인지시키고 발현하는
그 놀라운 광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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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동안 자신도 자신을 규정할 수 없었으나,
나름 숱한 시간 속에서 존재가 존재를 인식하고,
규정하기 시작하는 그 시점이었으리라.
아직 온전치 못하지만,
아니 평생을 온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완성을 향하여 가는
그 실체적 발걸음이 시작됐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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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걸음마가 이른 듯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존재들은 나를 거름 삼아
나보다는 조금 더 일찍
더 튼튼하고
더 민첩하며
더 지헤로운 인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