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삶을 치유하기...
모리스 위트릴로는 괴이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대개 하얀머리칼의 젊잖게 늙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여유로운 표정의 노화백이 생각난다. 하지만 위트릴로의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사생아라는 출생자체와 어린시절부터의 음주와 갖가지 병으로 피폐해진 육체, 역마살이 낀 그의 인생은 그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이 결국 그를 화가에의 길로 인도했으며(그는 그림엽서의 그림을 베끼는 등의 초보적인 독학의 과정을 통했다) 그림을 그리며 그의 삶을 진정시키고 남은 생을 편안히 마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그림은 인생역정을 통해 무뎌진 그의 감성의 표현이자 도구인 동시에 무뎌진 그것을 지탱해나갈 수 있게한 윤활유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예전에 야마다 에이미의 책을 보면서 작가의 이력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녀는 호스티스도 했었고 미군 흑인과의 결혼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잔 발라동과 비교하자면 그리 대단한 것도 못되는것 같다. 수잔 발라동은 무용가이면서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했으며, 드가와 로드렉, 르노와르와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의 모델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꽤 유명한 여류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빛나는 자격증은 바로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라는 점일 것이다.
발라동의 남편도 화가였으나 술주정뱅이였고 결국 위트릴로가 태어나기전 죽고만다. 위트릴로란 성은 발라동과 친분이 있는 스페인 사람의 성을 따랐다한다. 결국 발라동은 위트릴로를 존재하게 했고, 그의 삶의 시작을 약간은 고되게 만들어줬으나 결국은 그를 인도해줬다. 위트릴로에게 그림을 권유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위트릴로의 그림은 흰색을 바탕으로 한 파리의 풍경을 위주로 그렸다. 공허함의 세계를 표현했다고할까? 그의 고된 삶은 아름다운 풍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나보다. 그의 눈에 세상은 흑백의 단조로운 모순덩어리였다.
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깊어지고 넓어져갈수록 그의 그림엔 여러색깔이 보여졌다. 겨울처럼만 보이던 파리의 풍경이 봄, 여름, 가을의 색깔을 입은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색채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성이 떨어졌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평가받고자 그린 그림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에 만족감을 주고자 그림을 그렸던것이 아닐런지... 난 오히려 그만의 독특한 화풍보다는 여러색채가 혼합된 그의 풍경화를 더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편하고 그가 그리기에도 편할것이라는 나만의 생각때문이다.
위트릴로의 그림을 보고있노라면 파헬벨의 케논이 듣고 싶어진다. 맑은 소리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피아노 소리에는 캐논이 최고로 어울리는 듯 하다. 그리고 그의 그림 또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자신에 대해 약간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는 최고의 그림이다. 나중에 정말 여유가 있다면 위트릴로의 그림을 거실에 한점 걸어두고(모사품이라도 상관없지만 진품이라면... 하지만 살 돈이 분명 없을거다) 딸내미가 연주하는 캐논을 듣게 된다면 그이상 행복한게 없을것 같다. 우리 딸내미가 피아노를 배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발라동과 위트릴로의 모습은 여느 행복한 모자의 모습과 별반 다를바 없어 보인다. 솔직히 발라동을 마타하리정도의 대단한 미인으로 상상했지만서두... 위트릴로의 어린시절은 꽤 귀엽다.
고난의 삶들이 그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두모자는 서로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땐 그랬었지하면서 즐겁게 추억할 수 있을것이다. 내게 주어진 약간의 어려움도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든 시기가 올때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마누라와 아들과 딸과 둘러앉아 그때를 생각하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보지만... 참 행복한 모습의 어머니와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