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너 때문이야

by 이야기여행자

그날은 신기하게도 모든 게 계획했던 대로 풀렸다. 오랫동안 애를 먹였던 세무조사 건이 매듭지어졌고, 사놓았던 주식은 이틀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8월의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그 끈적함마저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부서원들에게 커피를 한 잔씩 사줬다. 한 사람이 한 잔씩 골라 들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니, 내가 뭔가를 잘 해냈다는 감각이 조금 더 확실해졌다.

커피가 나오기 전, 나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 오랜만에 가족 외식 어때? 가고 싶은 데 있으면 말해’

보내고 나서도 휴대폰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읽음 표시가 뜨자 마음이 놓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때부터 불편해졌다. 읽었는데 답이 없다. 그렇게 간단한 질문에. 아내는 원래 답이 빠른 편이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한 번 더 보냈다.

‘오늘 좋은 일 있어서 한턱내려는 거야’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또 보냈다.

‘왜 답이 없어?’

회의 중간, 화면에 떠 있는 숫자들이 흘러가는데도 자꾸 손이 휴대폰으로 갔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예민해지는지 나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이 기분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기분 좋은 날에, 집도 기분 좋아져야 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회의가 끝나자 나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당신, 메시지 봤잖아.”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커졌다. 주변에서 들었을까 싶어 순간 고개를 들고 눈치를 살폈다.

아내는 잠깐 숨을 고르는 소리도 없이 말했다.

“집안일하느라 바빠서. 왜, 급한 일 있어요?”

그 무미건조한 말투에 내가 더 말할 여지가 사라졌다. 아내는 싸움을 피하려는 듯도, 맞서려는 듯도 아니었다. 그냥… 평평했다. 그 평평함이 이상하게 마음을 긁었다.

“아니… 오늘 저녁에 외식하자고. 세림이도 같이 오면 좋고.”

“그래요. 근데 세림이는 오늘 학원 갔다가 늦게 온다고 했는데… 일단 물어볼게요.”

“그럼 세림이 좋아하는 소고기 먹으러 갈까?”

나는 기어코 다음 질문을 얹었다. 좋은 날에는 좋은 답이 돌아와야 한다고, 나는 어딘가에서부터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물어보고 얘기 줄게요.”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손이 좀 떨리는 걸 느꼈다. 아내가 무심해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먼저 꺼내든 손을, 아내가 ‘별일 아닌 것’처럼 다루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마치 내가 대단한 결심을 한 게 아니라는 듯이. 오늘 저녁 식사가 단순한 밥이 아니라는 걸, 아내도 알 텐데.

나는 다시 한번 메시지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빨리 답해” 같은 말을 써 내려가다 지웠다. 그런 말은 회사에서나 하는 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결국 나는 집에도 그 방식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계속 메세지를 보내는 남편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오늘 저녁이 정해질 것이고, 정해지는 순간 또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귀찮고, 하찮게 느껴졌다. 마음이 그렇다고 손이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고, 티셔츠를 펴서 접고, 바지를 반듯하게 개어 남편 것, 딸 것, 내 것으로 나눠 넣었다. 서랍을 닫을 때마다 ‘딱’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들이 집 안에 작은 벽을 하나씩 세우는 것 같았다.


코코가 목줄을 들고 현관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목줄을 채우고 밖으로 나갔다. 30분쯤 걸었다. 코코는 먹은 것도 많지 않은데 똥을 두 번이나 쌌다. 나는 습관처럼 주머니를 더듬어 비닐봉지를 꺼냈다. 여분이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이런 게 없어서 곤란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늘 대비했다. 비닐봉지를 챙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억하면 되고, 준비하면 되고, 주머니에 넣어두면 되니까.

그런데 남편과 딸의 다툼은 대비가 되지 않았다. 늘 갑자기 시작됐고, 시작되면 끝을 알 수 없었다. 친정 언니에게 하소연했을 때 언니는 한 번 웃으며 말했다.


“그게 싸움거리가 돼?”

아빠가 먹을 아이스크림을 딸이 먹었다고 싸우고, 영화 해석이 다르다고 싸우고, 딸이 여행을 같이 안 간다고 해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재작년 초였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였다.

남편이 먼저 나섰다.

“고등학생 됐으면 옷 좀 제대로 사자.”

딸은 안 사도 된다고 했다. 사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우리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평소엔 아울렛에서 철 지난 옷을 사면서도, 그날만큼은 신상을 사주겠다고 했다. 딸이 고맙다고 웃기만 하면, 남편은 ‘아빠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표정을 지을 텐데, 딸은 웃지 않았다. 백화점의 어떤 옷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표정이 닫혀 있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그때부터 단단해졌다.

“아빠가 사준다는데 고맙다고 하고 그냥 사면되지. 왜?”

딸이 말했다.

“아빠… 제가 안 사줘도 된다고 했잖아요. 아빠가 가자고 해서 나온 거예요.”

“그럼 왜 나온 거야.”

이야기는 늘 그랬다. 질문이 질문을 낳고, 대답은 대답이 아니게 되고, 결국 결론은 같았다.

“이 녀석이. 지금 아빠한테 대드는 거야?”

“이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제가 입고 싶은 건 따로 있다고요.”

그날도 그랬고, 그날 이후에도 늘 그랬다. 이유는 매번 달랐는데, 끝은 매번 같았다. 나는 그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불안했고, 싸우는 순간에는 더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말을 하면 누군가의 편을 드는 것이 되고, 편을 들면 다른 누군가가 무너졌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늦었다. 막기 시작하면 이미 부서진 뒤였다.


문득, 그날 밤이 떠올랐다. 방문 앞에서 멈춰 서 있던 내 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 딸의 울음소리. 그때 내가 조금 더 일찍 들어갔더라면, 조금 더 단호하게 남편을 막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각이 길어지면 나까지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접시를 닦고, 옷을 개고, 코코의 목줄을 정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에서 눈을 떼었다.


남편도, 딸도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다… 아빠 때문이에요…”

“다… 세림이 때문이야…”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누구에게도 똑바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가 아니라, 내가 뭘 하지 않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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