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수능이었다.
집 안의 공기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방 안에 있었고, 아빠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의 하루는 거실에서만 흘러갔다. 엄마는 가끔 내 방문 앞에 섰다가, 노크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문 앞에 남은 건 늘 짧은 정적뿐이었다.
두 달 전 아침밥을 먹던 날, 엄마가 밥공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세림아. 너는 글을 잘 쓰니까… 논술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잠시 멈췄다.
예전에 아빠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때도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몰랐다. 그냥 아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었다.
“엄마. 내가 글을 잘 써요?”
엄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전부터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그랬잖아.”
“나는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아빠도… 네가 그쪽에 재능이 있다고 했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단번에 올라왔다.
재능. 아빠. 기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럼 아빠가 하라는 거잖아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내가 싫다는데 어떡해요? 엄마가 나 대신해줄 것도 아니면서.”
엄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 수시 안 봐요. 어차피 최저도 안 될 거고요. 그냥 대학교 안 갈래요.”
말이 너무 쉽게 나왔다.
나는 그 말이 엄마에게 어떤 모양으로 박힐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칼날을 만들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던졌다. 엄마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세림아… 그게 아니라…”
나는 듣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이 가빠졌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나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결과를 요구하는 아빠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누군가를 먼저 밀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나는 아무 문제없다고.
이 집이 문제라고.
부엌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물에 젖은 장갑이 싱크대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엄마는 그 장갑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벗어 걸어두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 잠시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세림이는 재능이 많은 아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편보다도, 세림이 자신보다도 먼저.
공부는 아니었다. 시험 점수나 등수로 증명할 수 있는 종류의 재능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말이 빠르고 감각이 예민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도 늘 자기만의 리듬이 있었다. 어릴 적 세림이가 종이에 그려온 만화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웃기보다는 놀랐다. 이 아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내가 아는 아이들의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남편도 그때는 세림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딸은 똑똑해.”
“말하는 거 봐라, 보통이 아니야.”
그 말들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같은 아이를 보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가 자라면서부터였다.
남편의 기대는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성적, 순위, 대학, 미래.
나는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과연 저 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딸이 공부 얘기를 피할 때마다, 남편은 설명을 늘렸고 설득을 더했다.
나는 그럴수록 말을 줄였다. 누군가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쪽이 앞으로 밀면, 다른 한쪽은 뒤에서 버텨야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 역할을 맡았다.
그때부터 술이 늘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 날부터인가 저녁에 맥주 한 캔이 필요해졌다. 남편과 딸 사이에 말이 오간 날이면, 두 캔이 되었다. 그날 있었던 대화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서였다.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 판단하는 대신, 그냥 흘려보내고 싶었다.
나는 늘 생각했다.
세림이가 잘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아이만 자기 자리를 찾으면, 남편도 조금은 내려놓을 거고, 그러면 이 집의 공기도 달라질 거라고.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남편의 기대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기대는 충족될 수 없다는 걸.
완벽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순간에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걸.
세림이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야 했다.
그런데 남편은 늘 ‘더 나은 딸’을 찾고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말처럼,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질 수 있다면, 과연 누가 그런 자격이 있을까. 남편은 스스로에게 그 기준을 적용해 본 적이 있었을까.
나는 딸에게 글과 그림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아이가 숨을 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논술이라는 말도, 사실은 핑계였다. 아이에게 “너는 이쪽에도 길이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림이는 그 말을 거부했다.
마치 또 하나의 기대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이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또 다른 짐을 얹어버렸다는 걸.
“엄마가 나 대신해줄 것도 아니면서.”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변명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혹시 내 편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끝내 누구의 편도 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고.
내가 바란 건 아이의 행복이었다.
남편과의 평화도, 집안의 안정보다도 그게 먼저였다.
그런데 나는 그 행복을 말로만 바랐을 뿐, 행동으로는 끝내 선택하지 못했다.
세림이는 아직도 말한다.
자기는 아무 문제없다고.
나는 이제야 안다. 그 말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말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과연 내가, 이 아이의 엄마로서, 무엇을 지켜주었는지.
무엇을 놓쳐버렸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