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공방전

by 이야기여행자

“후우… 아임 유어 브라덜…”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낮고 묘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작은 비명과 함께 두 걸음 뒤로 무의식적으로 날아갔다.

“으아!! 뭐야!!!”

오빠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 망토는, 아무리 봐도 우리 동네 떡집 ‘형제떡집’ 보자기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다스베이더 마스크.

이게 정상인의 차림인가?

다음 달이면 군대 간다는 사람이 이러고 있다. 요새는 예행연습한답시고 유튜브로 전쟁영화 요약본만 보면서 군생활 예습 중이라는 사람이다. 근데 전쟁이 그리 자주 일어나는 거였나?


“회담을 하러 온 것인가? 휴전이라면 거절일세.”

“오빠… 제발 그만하자. 내가 가쓰오부시 우동 다시 사다 줄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빠는 문을 쾅—! 닫고 외쳤다.

“아니!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지! 협상? 결렬!”

나는 눈을 감았다.
아… 이 인간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지.


2년 전 즈음이었나? 문득 오빠가 깁스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팔이 부러져서는 나에게 신난 목소리로 얘기했었다.

“야 김은서, 팔 부러지면 뭐가 제일 힘든지 알아? 똥꼬 닦기! 푸하하하하!”

그때 나에게 닦아달라고 매일매일 요청했었다. 대학생인 오빠가 고3인 여동생에게.
그 미친 요구를 거절하자,
내 방 앞에서 “닦아줘~~” 하고 시위를 했던 인간이다. 지누션의 ‘말해줘’를 개사해 ‘닦아줘’라는 노래까지 만들었다.

결국 아빠가 해주는 걸로 마무리되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니 토가 나올 것 같다.

‘아… 더러워. 오냐… 해보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에 머리끝까지 짜증이 났지만, 무시했을 때 벌어질 상황은 상상조차 안 됐다. 하물며 중재자인 부모님도 안 계신 상황…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오후 4시.
점심도 못 먹어서 배가 꽉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4-1.png 황당한 차림새의 오빠를 보고 당황하는 은서

오빠도 점심을 안 먹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나랑 달랐다.

나는 짜증 때문에,
오빠는 흥분 때문에.

나는 냉장고 앞으로 갔다. 내 이름이 붙은 치즈 한 장을 꺼내고, 혹시 더 먹을 만한 게 있나 살펴봤다.

딸기, 치즈케이크 조각, 1L 그릭요구르트, 아몬드 봉지. 어라? 그런데 전부 이름이 없다.

‘뭐지?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그때 눈에 들어온 글씨.


‘이런… 버전 1.1 이잖아…’

규칙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버전 1.1이라고 써진 규칙에는 2번 맨 마지막에 단 한 줄이 더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도 빨간색으로 해서 가독성은 좋았다. 이걸 쓰고 얼마나 뿌듯해할지 안 봐도 뻔했다.


2. 규칙

본인 이름이 적힌 음식만 먹기(내꺼 먹으면 미워용)

상호 합의 시 음식 교환 가능(니가 잘하면.ㅋㅋ)

외부 음식 반입 금지(외부세력의 도움 싫어용)

위반 시: 상대방에게 음식 5개 반납(기대하마!ㅎㅎㅎㅎㅎ)

이름이 안 붙은 물건은 손대지 말 것(나도 손 안댈거임)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딸기와 아몬드를 요구르트에 넣어서 치즈케이크와 같이 먹으면 참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함정일 수도 있어…’

하지만… 배도 고팠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조합인지라 내 본능은 이성을 제쳐버렸고 이미 내 입과 배가 원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

나는 오빠 방 쪽을 슬쩍 확인한 뒤, 마치 닌자처럼 몸을 낮추고 재빨리 딸기와 요구르트를 꺼냈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릭요구르트에 딸기와 아몬드를 넣고, 치즈케이크도 조각내서 예쁘게 세팅했다.

완. 벽. 이제 이걸 들고 방으로—


‘띠로리!’

뭐야? 이 소리?


“뭐긴 뭐야아~”
갑자기 냉장고 뒤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터졌다. 발음마저 미친 듯 들떠있다.

“우헤헤헤… 김! 은! 서! 딱 걸렸어어어어!”

나는 깜짝 놀라 손에 쥔 치즈케이크 조각을 떨어트릴 뻔했다.

냉장고 안 깊숙한 코너에서 LED 불빛이 반짝하고 있었다.

‘… 몰래카메라…? 설마 냉장고에까지?’

오빠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형제떡집 망토가 휘날렸다.

“봐라! ver 1.1 패치에 ‘보안 강화’ 포함되어 있었지이~ 마이너스 10점! 그리고 너 이름 붙은 음식 5개 압수~!”


나는 그 자리에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무너져 주저앉았다.

음식 때문에 무너질 줄은 몰랐다. 아니… 무너진 건 음식이 아니다.

오빠에게 놀아났다는 굴욕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 위에, 천천히 뜨겁고 찐득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온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단어 하나뿐이지만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매섭게 냉장고를 노려봤다.

‘두고 봐… 내가 이 인간한테 진짜로 복수할 거야.’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오프닝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