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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쓰는 육아대디 Mar 29. 2024

일을 잘하면 피곤하다

회사에서 살아남는 방법

어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던 오전.


출근하자마자 매일 같은 업무가 주어진다. 카카오톡 비즈니스 관리자 계정으로 들어가 우리 뉴스에서 주요 소식들을 선별해 회사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전날 다른 동료가 만들어놓은 영상에 썸네일을 만들고 유튜브와 자사 홈페이지, 포털까지 업로드를 완료한다. 반복적이고 지루하지만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꼭 필요한 업무다.


일상적인 업무를 끝내고 이제 본격적인 내 업무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업무 하나가 떨어졌다. 전날 나간 70분짜리 방송을 5분으로 요약해 영상을 제작하라는 업무다. 당황스러웠다. 영상 제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70분짜리 영상을 5분으로 축약하려면 70분 전체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당황스러운 부분이었지만. 난 기사를 쓰는 방송기자다. 영상을 다루는 영상 편집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영상 제작 업무가 떨어진 것이다.


기사를 쓰는 내 업무 외에 서류 작업이나 외부 업체, 협력사 간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내고 처리하는 일까진 이해할 수 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회사 안에서는 회사원이니까. 그런데 영상 편집 업무를 맡기는 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유튜브를 통한 독학, 대학 방송국에서 기술국 동료들의 어깨너머 배운 것이 전부다.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확 들어올만한 효과를 만들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영상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다는 것 하나에 이렇게 업무가 떨어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기자이기 전에 회사원이기도 했다. 업무 지시가 떨어지면 우선 처리하는 것이 먼저다. 70분이 넘는 방송본을 가져와 편집실로 들어간다. 옮기는 것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 10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5분 요약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쉽지 않았다. 전체를 다 살펴보는 것도 시간이 걸리지만 내용을 파악해서 핵심만 골라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방송에 나온 주요 주제 3개를 정해서 5분씩 모두 15분짜리 영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5분으로 줄이라고 하면 3개 중에 1개를 선택하면 그만이니까.


오전에 시작한 업무가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결과물을 상사에게 보여줬고 마음에 들었는지 고생했다며 업로드하라고 했다. 5분 요약 업무 지시를 5분짜리 3개를 만드는 내 방법이 통했다. 업로드를 마치자 눈은 빠질 것 같았고 손목이 저렸다. 밥 먹는 시간 외에 쉴틈도 없이 영상 편집에만 몰두한 탓이다. 덕분에 내 본연의 업무인 기사를 쓰는 것은 평소보다 절반도 쓰지 못했다.


짧지 않은 회사 생활에서 느낀 부분이 있다. 내가 가진 능력을 전부 보여주면 모두가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내가 가진 능력만큼 일을 더 시킨다. 물론 그만큼 내가 회사에서 가질 수 있는 입지와 승진 기회 등 장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장점이 분명한 만큼 단점 또한 분명하다.


나의 능력을 보여줄 때 회사의 분위기가 참 중요하다. '일을 잘하니까 당신이 더 하세요' 이런 분위기면 최악이다. '일을 잘하니까 대단하네' 이 정도면 양호. '일을 잘하니까 넌 성장 가능성이 있다' 이건 최고다. 내가 가진 나만의 능력을 보여줄 때 한 번쯤은 고민해봤으면 한다. 내가 속한 회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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