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취재기(2)
매캐한 냄새가 곳곳이 퍼져있는 도시에 있는 모텔방에서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부터 살폈는데 별도로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을 보니 밤사이 도심쪽으론 불길이 번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산불이 다행히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까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잠들기 전 산불이 심하게 번지면 현장에 갈 수도 있다는. 다시 말해 언제든 현장에 가야할 상황이 있을 수 있어 잠을 잔듯 안잔듯 걱정과 불안을 안은 채 밤을 보냈다.
하지만 산불 상황을 찾아보니 밤사이 강한 바람에 경북 영덕에까지 영향을 줬고 곳곳이 불에 탔다는 기사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은 긴급하게 대피했고 곳곳이 아비규환이라는 것. 우리 취재진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영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동을 벗어나 영덕 초입에 진입하자마자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서비스 지역이 아님'
휴대폰이 완전 먹통이 된 것이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나 문자조차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마을 쪽으로 돌리는 순간, 전화와 인터넷망을 연결해주는 전신주가 검게 탄 채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연락을 카톡으로 하고 긴급한 상황에선 전화로 소통하는 기자들에겐 현재 상황을 보고할 수도 그렇다고 현장에서 중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중계를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인터넷이 터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짜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하지?"
약속된 중계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불과 1시간. 인터넷이 살아있는 곳을 찾던, 상황을 빨리 데스크에게 보고해 조치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마을 두세곳을 지났을 쯤. 면사무소 건물이 보였고 산불진화대원과 마을 주민들, 공무원들이 모여 있었다.
"혹시 유선 전화 되는 곳이 있을까요?"
급하게 차를 세우고 공무원들과 주민들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였다. 주변을 돌아보다 119안전센터가 보였다. 일반 행정건물과는 다르게 소방은 그들만의 다른 소통 방식이 있진 않을까.
"안녕하세요. 급해서 그러는데 유선 전화 되는 곳이 있을까요?"
다행히 구석에 있는 작은 유선전화는 사용이 된다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있던 소방대원이 위성 어쩌고 하면서 통화가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그것을 기억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다.
휴대폰에 저장된 데스크에 연락처를 보고 유선 전화로 연락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다소 놀라는 눈치. 무리하지는 말라며 통신이 되는 곳으로 이동해서 현장 중계로 연결하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일단 현장에서의 상황을 알렸으니 그것으로 일단락은 된 셈이었다.
그렇게 마을 몇 군데를 더 지나가자 통신이 작게나마 들어왔고 중계를 불과 30여 분 앞두고 통신이 가능하면서도 산불 피해 현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렇게 무사히 현장 중계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정말 피해가 심각한 곳을 현장 중계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곳은 통신 중계기가 모두 불에 타면서 인터넷과 전화 모두 먹통이 됐기 때문이었다.
우리 취재진은 그렇게 통신이 되는 지점 몇 군데를 찾아뒀고 그 지점을 중심으로 피해 지역을 다녀오는 방식으로 현장 취재와 중계를 진행했다. 매번 왕복 이동 시간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라서 시간에 압박을 받았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2025년. 통신 강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바다 한가운데도 아니고 무인도도 아닌 곳인데, 심지어 마을이 있고 행정 기관도 있는 곳에서 통신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종일 믿어지지 않았다. 강한 산불에 통신 중계기가 모두 타버려서 그렇게 됐다는 이유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편으론 산불의 무서움과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산불은 말그대로 산에서만 불이 났던 것이었고 민가나 마을 쪽으로 내려왔어도 통신에 영향을 줄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산불은 달랐다. 강풍을 타고 번지는 산불. 불이 지나간 자리는 남김 없이 모두 다 태운 것.
바닷가 마을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민가가 모두 폐허가 된 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 취재진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불똥이 하늘에서 막 날아다녀요. 여기서 빠져나가는 길이 딱 하나인데 거기 바로 옆 산에까지 불이 나서.. 연락도 안되고 진짜 벌벌 떨면서 구조대원 오기만을 기다렸다니까요."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는데 통신이 안되면서 구조 요청마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저 이런 상황을 알 고 누군가 구하러 와주겠지라는 기약없는 믿음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산불 취재 2일차. 이젠 '불'이 조금..아니 많이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