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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쓰는 육아대디 Mar 29. 2024

대화하지 않는 부부

익숙함에 오디오가 끊어지지 않도록

나와 와이프는 말이 참 많다. 우리 부부의 MBTI는 모두 E로 시작한다.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오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서로 다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마치 그날 쏟아내야 하는 단어를 모두 입 밖으로 뱉어내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의 퇴근 후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서 편집기에 올려두면 오디오가 끊어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아이 또래들의 엄마들 모임에 같이 참석한 적이 있다. 엄연히 말하면 와이프를 데리러 갔다가 얼떨결에 참여하게 됐지만.. 엄마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나의 육아 방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육아라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한참을 떠들었다. 와이프 친구들이 수다스러운 내가 신기했나 보다. "집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난 당연히 그렇다고 했다.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와이프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면 오디오가 끊어지질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자 와이프 친구들이 말했다. "난 집에서 남편이랑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어", "쉬고 있으면 가만히 말 안 하고 있기도 한데?", "이젠 남편이랑 대화하는 게 어색하기도 해"


나도 깜짝 놀랐다. 집에서 대화를 안 하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남편이랑 아내랑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내 스스로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왜 대화가 어색해졌을까?'라는 고민까지 왔다. 과거를 돌아보면 남자 A는 여자 B가 좋아서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았나. 좋다는 감정에서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나. 적어도 남자 A가 여자 B를 꼬시기 위해서 감성이 가득한 사랑의 언어까지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부부들의 모습이 TV프로그램을 통해 나오는 모습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그렇게 싸울까. 서로 죽고 못살아서 결혼하고 같이 한 지붕 아래서 사는 것 아닌가. 결혼식 할 때의 모습,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다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얼마나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이 멋있고 또 예뻐 보였는가.


'익숙함'이 참 야속하게 느껴진다. 부부끼리의 대화가 어색해지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서로 너무 사랑하는 사이에서 한 지붕 아래 사는 원수가 되기도 하는 이유가 '익숙함' 때문인듯하다.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잘 알아서 그 사람은 당연히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서 이런 '익숙함'에서 오는 생각 때문에 부부 사이의 대화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


'익숙함'을 '감사함'으로 조금만 바꿔보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내 옆에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 것 같지 않을까. 어렵지만 서로 힘을 합쳐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아이를 키우는 그런 과정에서, 아무리 원수여도 바깥 험한 세상으로부터는 영원히 내 편인 사람이 없다면 막막하기만 하지 않을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봤으면 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괜찮다. 오늘 어땠는지,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요즘 힘든 것은 없는지. 큰 변화의 시작은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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