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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May 19. 2023

언더독: 안옥윤

영화 '암살' (2015)

#오늘의 언더독: 영화 암살의 안옥윤


1911년 경성, 열혈 친일파 아버지(강인국)와 독립군을 지원하는 어머니(안성심)라는 특이한 조합 사이에서 쌍둥이 언니(미츠코)와 함께 태어났다.

어머니의 정체가 탄로 나자 유모가 대신 데리고 만주로 도망쳤다, 그때 쌍둥이 언니와 헤어진다.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독립군 저격수로 자랐다. 계급은 상등병, 눈이 좋지 않아 저격할 때에는 안경을 쓰는데 백발백중이다.

상관살해 혐의로 영창에 갇혀있을 때, 조선 총독과 친일파 처단을 위해 드림팀을 찾던 중이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눈에 띄어 발탁된다. 그렇게 본인이 태어난 고향 경성으로 향한다.


쌍둥이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향하려던 옥윤의 어머니, 대쪽 같은 성격을 그녀에게 물려주었다 - 언더독 독립운동가에겐 가장 큰 선물 아닐까


#언더독인 이유, 그리고 만약 경성에 남은 것이 언니가 아닌 그녀였다면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기에 - 그것 만큼 언더독인 이유가 분명하기도 어렵다.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수준이 아닌, 모신나강 소총, 톰슨 기관단총 등을 사용하여 전투를 하는 열혈 독립운동가인 안옥윤은 그 시대의 탑독인 일제를 때려잡는데 가장 앞장서는 인물이다.


그녀의 개인적인 성격을 보았을 때도, 약간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는 듯하다.

신분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매우 냉철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으며 할 말 하는 대쪽 같은 성격이다 - 안옥윤이 영화 속에서 사실 상관을 실수로 쏜 게 아니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걸 크러쉬가 폭발한다.

하지만, 본심은 또래 20대 여자들처럼 경성에서 '코-히'를 마시면서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순진한 성격 같다. 몇 번 안 본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금방 사랑에 빠진 것이 증명한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씁쓸한 첫 커피


어머니가 친일파 남편으로 부터 딸들을 데리고 도망치려 할 때, 추격을 눈치채고 두 갈래로 나누어 달리자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따라 잡혔고, 피도 눈물도 없는 그의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딸을 되찾아온다, 그 아이가 미츠코다. 유모의 품에 안겨있던 다른 그룹의 옥윤은 운 좋게 만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 이후 자매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만약,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것이 언니 미츠코가 아닌 옥윤이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 독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친일파 부잣집댁 고명딸이 되어 탑독의 인생을 살았을까?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의를 쫓아 독립군이 되는 선택을 했을까.


필자는 아마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는 언더독 히로인의 DNA를 타고났다.

영화 속에서 옥윤은 '썸남' 하와이 피스톨이 조선군 사령관과 강인국을 죽인다고 독립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일제는 조선을 무력으로 침범했고 식민지로 삼아 수년간 온갖 수탈을 일삼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옥윤의 목표는 분명했다.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승산을 따지지 않고 뛰어드는 것 - 그것이 전부였다, 다수가 그 아무리 비웃더라도 말이다.

그녀가 최악의 친일파 아버지 강인국의 품에서 자랐더라면, 그 꼬락서니를 옆에서 지켜보며 더 큰 적개심을 품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쌍둥이라도 그녀의 언니 미츠코의 성향은 정말 다르다.

자신의 신념보다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휩쓸리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능동적으로 할 용기가 없다. 죽은 줄만 알았던 독립운동을 하는 쌍둥이 동생과 재회한 후 이렇게 말한다.



나도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좋아해, 그런데 너는 안 했으면 좋겠어

그냥 딱 그 정도의 사람이다, 아마 그 당시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했으리라 - 미츠코가 유모를 따라 만주로 갔더라도 옥윤과는 퍽 다른 행보를 보였을 것 같다.


#영화 속 이 언더독의 결말


해피 앤딩 반 새드 앤딩 반이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고 임무를 떠났던 옥윤과 동지들


암살목표었던 일본군 사령관과 친아버지인 강인국은 제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동지들은 총격전 끝에 모두 사망한다. 사랑에 빠졌던 킬러 하와이 피스톨도 죽고, 태어나서 처음 본 쌍둥이 언니 미츠코도 자신과 혼동한 아버지에 의해 죽었으며, 경성에서 비밀리에 독립군을 돕던 아네모네 마담도 죽었다.

오늘의 주인공 옥윤만 살아남아 미츠코의 신분으로 살아가며 비밀리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다 - 여기까지만 들으면 새드엔딩에 더 가까운 결말이다.


시간이 흘러 일제는 패망했고 대한민국은 독립을 맞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염석진(이정재) 같은 친일파들은 박쥐처럼 신분세탁에 성공해서 독립된 조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잘 살고 있다, 이게 일제한테 당했던 십수 년의 시절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었다.


여기서 이번화의 언더독이 탑독을 향한 마지막 최후의 어퍼컷을 날린다. 바로 16년 전 김구가 비밀리에 내린 지령,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를 실천한 것, 미츠코인줄만 알았던 옥윤의 총에 맞은 박쥐는 죽음을 맞는다, 너무도 통쾌하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목표를 이뤄보겠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할 때의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 누가 확실하게 '언제까지 이만큼만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어요!'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불안감을 가지고 컴컴한 터널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한다.


필자는 이번 영화의 결말이 옥윤을 비롯한 지금 이 시간에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자신들의 순간을 위해 참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사람들의 선택에 큰 힘을 실어준다.

물론 흔히 말하는 '존버'만이 멋지고 살면서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인 것은 아닐 것이다. 영리하게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독립이 되겠냐, 그 시간에 친일을 하고 말지'라는 사람들의 조소를 견뎌내며 몇십 년을 버텨온 옥윤을 비롯한 동지들의 세월은 마침내 자신들을 곤란해 빠뜨렸던 박쥐 같은 변절자를 직접 저격하며 보상을 받았다.


미련하게 보일지 몰라도 인생을 한순간에 역전시킬 만루홈런을 노리는 것보다 안타, 도루를 꼬박꼬박 적립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언더독들에게 그녀는 분명 귀감이 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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