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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Jul 26. 2024

아웃사이더: 임규남

영화 '탈주'(2024)

#본인의 의지를 가져 볼 수 조차 없었던 규남이


우리는 자기 계발 콘텐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 유튜브 영상 속의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은 형, 누나들이 주는 메시지의 본질은 이거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만의 것, 진취적으로 개척하세요!'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오늘의 주인공 규남이가 딱 그런 경우다.


북한에서 태어났고,

모두를 동무로 부르지만 사실 어느 곳보다 계층의 격차가 확실한 그곳에서 좋지 못한 출신 성분에,

부모님을 여의고 가족도 없으며,

의무 복무 기간이 10년인 북한군에서 근무 중이다.


진취적으로 꿈을 꾸라고 하기에도 미안한 환경이다.


오늘도 의미 없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상에 누워 전역 이후의 막막한 삶을 걱정하는 듯 어두운 얼굴로 잠을 청하는 그는 아웃사이더가 확실하다.


#아문센


규남이는 어릴 적부터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의 팬이었다.

피아노 잘 치는 동네형이 준 아문센의 전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북한에서는 꾸기 힘든 꿈을 가졌다 - 바로 '탐험가' 되기!


그는 사실 무기력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속이 뜨거운 남자였다.

어린 시절의 꿈을 매일 밤 현실화 시키고 있었다 -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탈주하기 위해 지뢰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오고 있었던 것.


규남이는 현재의 위치는 비록 시궁창이나, 본인의 힘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 그런데 그런 그를 묘한 감정으로 보는 빌런이 하나 있었다.



북한 사회 최 상류층 보위부 사령관의 아들 소좌 리현상.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걷는 그는 오늘의 아웃사이더와 인연이 있다.

규남의 아버지는 현상의 아버지의 운전수였던 것 - 어릴 적부터 상하관계가 미묘하게 정해진 느낌이다, 기분 나쁘게 시리.



규남이의 탈주 계획이 발각되자 현상은 굳이 굳이 그를 도와준다, 그리고 과거 아버지 세대의 관계처럼 운전을 자연스럽게 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규남아 너 정말 탈주하려고 했니? 아니지? 네가 그런 베포가 있는 종자가 아니지, 네 아버지처럼


오만 방자한 한마디, 그리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본인의 운명을 잘 받아들일 줄 알아서'라는 역겨운 말도 덧붙히며 그를 사령관 보좌관으로 만들어 버린다 - 아무리 그래도 강제로 군생활을 연장시키다니.


오늘의 아웃사이더는 이 대목에서 완전히 결심한다.

나는 무조건 자유를 찾아 떠나고 만다고.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


현상이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 바로 자격지심이다.


본인의 운명을 잘 받아들일 줄 아는 건 자신이었다.

러시아 유학 당시 콩쿠르를 휩쓸 정도로 뛰어났던 피아노와 정말로 사랑했던 남자 애인의 존재를 애써 가슴속에 묻고, 북한에 돌아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그의 눈에는 나 보다 한참 못한 존재 규남이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게 꼴 보기 싫었던 거다.


사령관 보좌관으로 임명된 그날 바로 탈주를 감행한 규남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돌아오면 최소한으로 처벌받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현상에게 돌아온 주옥같은 문장.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



자격지심을 제대로 건드린 한마디에 빌런은 눈이 정말 돌아버린다.

앞만 보고 달리는 규남을 끝까지 쫓는다.


북한군 10년이면 인간병기가 되나 보다 - 맨몸으로 달리고 또 달려 귀순자들을 위한 남쪽 분계선까지 도착했다.

규남은 대단한 성공이나 인싸가 되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 마음껏 실패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그 꿈까지 몇백 미터가 남았을 때, 역시 영화감독들은 끝까지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권총을 든 현상이 나타나 규남을 쏘아댄다.


피를 흘리며 남한 분계선에 손을 뻗는 규남의 꿈을 꺾기까지는 단 한 발만이 남았다.

하지만 현상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살려 보내준다.



그렇게 오늘의 아웃사이더는 해피앤딩을 맞이했다.


현상은 왜 끝까지 빌런짓을 하지 못했을까.

규남이 어린 시절부터 닳도록 읽으며 꿈을 키웠던 아문센 책을 준 피아노형이 바로 리현상이었다.


아마 그 꿈을 심어준 것이 본인인 것을 알기에 마지막 순간 그 책임을 진 게 아닐까.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죽음보다 의미 없는 삶을 더 두려워해라, 생일 축하한다 규남아! - 피아노 형이


<사진 출처 - 네이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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