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용의 출현' (2022)
단군이 한반도에 자리 잡은 후로 보통 우리는 주위의 덩치 큰 이웃들에게 얻어터지는 입장이었다.
1592년, 늘 무시했던 일본이 쳐들어왔다 - 명나라를 정벌해야 하니 길을 터달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 민족의 특징은 외양간을 튼튼히 하기 전에 소부터 잃고 시작하는 건가 보다.
아무런 대비를 안 해놓았던 조선은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고, 분위기를 탄 일본은 수도로 내달렸다.
우리의 왕 선조는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선택을 했고, 군대는 육지에서 하는 거의 모든 전투에서 참패할 뿐이다.
어떻게든 버텨오던 한민족은 정말로 지도에서 없어질 위기다.
남은 건 바다뿐, 전라도 총사령관 이순신 장군은 두려움에 가득 찬 병사들을 데리고 한산도로 나아간다.
누가 봐도 언더독이지만 그의 목표는 이거란다 - 압도적인 승리
자신감일까 객기일까.
오늘의 언더독은 수영의 박태환, 피겨의 김연아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온 기적 같은 존재다.
그의 장점을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부족하지만 오늘 스포트라이트를 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거다.
미친 위기 대처 능력.
회사에서, 아니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일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극소수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은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 우리는 그 좌절감에 저격당해 당황하고 아파한다.
이순신 장군님은 다르다.
첫 번째,
그는 이미 직전의 사천 해전에서 그의 야심작 거북선을 일본군에게 선보였었다.
대왕거북이처럼 생긴 모습을 본 침략자들은 바다괴물이라고 부르며 멘붕에 빠질 뿐.
하지만, 무시무시한 겉모습과 다르게 큰 단점 또한 있었다 - 충파, 즉 상대배와 부딪히는 전술 시에 용머리가 걸려 빠지지 않는 것.
이순신은 여기서 좌절이 아닌 약간의 수정을 하기로 한다.
나대용이라는 오른팔을 시켜 용머리를 넣었다 뺐다가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선체를 더욱 낮게 만들어 일본군들을 유린했다.
본인의 야심작의 결함을 인정하고 취한 재빠른 액션, 모든 리더들이 배울만하다.
두 번째,
이번 한산도에서 상대할 장수는 차원이 다르다.
와키자카 - 용인에서 2,000명의 군사로 50,000명이나 되는 조선 육군을 괴멸시킨 무시무시한 놈이다,
그의 존재로 조선 수군에는 전염병처럼 두려움이 퍼지고 이것은 치명적인 위기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순신은 이렇게 하기로 한다.
학익진 - 그의 시그니쳐 전술을 토대로 바다 위에 배들을 늘어뜨려 성처럼 쌓고 일본군들을 유인하기로 한다.
와키자카는 과거 학익진을 여러 번 깨부수어본 경험이 있는 자다, 측면 급습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의 언더독은 그런 상대의 오만함을 이용했다.
업데이트된 빠른 거북선으로 먼저 선수를 쳐 아수라장을 만들어버렸다.
탑독과 언더독의 입장이 바뀐 순간, 리더의 말 한마디에 학익진에서 일제히 대포가 쏟아진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해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탑독이 방심하는 틈을 타 본인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전략을 유지하되, 참신한 아이디어를 섞어 역습하는 것, 언더독들의 대표적인 위기탈출 방식이다 - 마치 호카, 온, 아식스등의 그동안 나이키의 기에 눌려 있던 운동화 브랜드들이 자신들만의 길을 묵묵히 걷다 2024년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서양의 전쟁사에서는 이 정도 승리를 거두면 서로 물러나는 것이 관습이었다 - 리더끼리 1:1 맞짱을 떠서 한쪽이 지면 조용히 물러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 주위의 중국, 일본등 강대국들을 오늘 이겼다고 해서 살려 보내면 금방 재정비를 해서 다시 죽일 듯이 쳐들어 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함대를 전멸 시 킨 후 부하 장수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장군, 실로 완벽한 승리입니다
이순신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다, 더 나아가자.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기세를 살려 이어지는 해전에서도 승리하고, 부산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 본영을 초토화시키는 것으로 한산도 대첩이 완전히 끝났다.
이번 화의 주인공은 오늘내일하는 상황에서도 기가 막힌 위기 대처 능력으로 나라의 영웅이 되었고 오늘날 광화문 광장에 늠름한 기세로 서있다.
600년 전의 그는 현재 무언가 힘에 밀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말해준다 - 극적인 도약을 꿈꿔보는 것도 허황된 게 아니라고 말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