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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7. 2022

161209-07

스크린도어에 낀 남자



그리고 며칠  회사 워크숍으로 스키장을 갔던 그녀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해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여직원 1명과 함께 즉사하는 정말 말도  되는 일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그다음 날인지 다다음 날인지 1개월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러 나는 강원도로 갔었다. 그렇게 나의  회사생활은 그녀 없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때 장례식 바로 뒤 일정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개월간의 연수를 마치고 회사로 첫 출근을 했는데 내 책상에 편지가 한 통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우리의 첫 폴라로이드가 들어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앨범에서 찾았으리라. 그 사진을 보며 또 한 번 무너져 내렸겠지. 저렇게 예쁘게 웃는 딸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냈으니. 그 사진은 내가 간직해주길 바랬겠지. 하지만 집 주소를 몰랐으니 회사로 보낸 것이리라. 자기 딸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함께해줘서 고마웠다고.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지만 다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싶어 졌었다. 앞으로 내가 또 새롭게 겪을 많은 첫 경험들을 그녀와 공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함께 했던 수많은 첫 경험들이 두 눈과 가슴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잠시 그렇게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민지훈씨 사원증 목에 걸고 대회의실로 오세요.” 그 목소리가 조금만 늦게 들렸다면 나는 아마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알리는 그 목소리에 나는 봉투 옆에 있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그 뒷면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뒤집어서 넣고 급히 대회의실로 갔었다. 그날 이후 그녀 없이 7년이 흘렀다.    

 

왜 아까는 가방 안에 사원증과 사진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 사실은 몰라서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방을 다리 사이에 낄 수도 옆구리에 낄 수도 한 손에 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방이 지하철 선로 밑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잠깐이지만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7년 동안 결근은커녕 지각 한번 안 하며 성실히 다녀온 회사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그리고 2015년 12월에 멈춰버린 그녀와의 추억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하지만 그 해방감이 불안감이나 죄책감으로 바뀌기 전에 팔과 다리가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왔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며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봤다. 오전 8시 17분. 월요일이 아니었다면 출근도 안 했을 시간.      


팀장에게 문자가 팀원들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팀장의 문자는 새벽 3시 5분에 온 것이었다.


내일부터 월요일 팀 회의는 8시 40분으로 합니다.      


팀원들과의 단체 카톡방에는 100개도 넘는 톡이 쌓여있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팀 회의가 미뤄진 것에 대한 기쁨과 일요일 새벽 3시 5분에 문자를 보내는 팀장에 대한 비난의 내용일 것이었다. 어제 새벽 3시에 팀장에게 수정된 파일을 보냈고 3시 5분에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라는 답을 받자마자 불을 끄고 누웠다. 알람은 제외한 모든 기능의 소리를 무음으로 해놨기 때문에 5분 뒤에 온 팀장의 회의시간에 대한 문자는 확인을 못했다.


만약 내가 어제 바로 잠이 안 들어 오늘 회의시간이 40분 늦춰진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평소보다 30분 정도 더 늦게 일어났을 테고 그랬다면 졸다가 가방을 두고 내릴 뻔했다가 결과적으로 그 가방 때문에 스크린도어에 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30분 늦은 지하철을 탔더라도 조금 전과 똑같은 일을 겪었을까?   

   

35년을 살면서 아직도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은 나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치열했든 게을렀든 슬퍼했든 행복했든 고통스러웠든 즐거웠든 어쨌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 시간 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도 그 사람과 함께 나눴던 추억도.      


10분 뒤면 직원들이 출근을 시작할 시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서둘러 여의도역으로 갔다. 여의도역에서는 항상 상일동행 방면으로 내려갔었다. 처음으로 방화행 방면으로 내려갔다. 첫 방화행 지하철. 그녀와 함께도 아니고 그녀를 추억하며도 아니고 그냥 첫.      


신길역에 내려 직원에게 말해 선로 바깥쪽에 있을 가방을 꺼낼 것이다. 펜과 수첩과 브로슈어와 책과 사원증은 버리고 폴라로이드는 그녀의 납골당에 가서 그녀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는 칸에 끼워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멈춰있던 7년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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