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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07. 2022

161021-04

소리의 기억



닫혀버린 지하철 문 안으로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보였지만 이미 지하철은 출발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떨어뜨린 것이 핸드폰이 아니라 귀걸이였다면 그렇게 무심하게 발길을 돌릴 수 있었을까? 어쩌지는 못해도 아마 한동안 지나가는 지하철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핸드폰이기에 먼저 영화를 보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분실물 센터에 연락을 해보기로 하고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영화관에 도착해 그녀의 유일한 자극적 간식인 콜라와 나초를 사들고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예매내역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직원의 안내가 들린다.    

  

영화예매 내역도 카드결제 내역도 모두 핸드폰이 있어야만 증명이 가능한 것들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가 이 영화를 이 시각에 이 영화관에 예매했다는 것을 핸드폰 없이 어떻게 확인하지?    

 

“모바일 티켓 없으세요? 그럼 저쪽으로 가셔서 티켓 발권해오시면 됩니다.”   

    

다행히 다른 방법이 있었고 직원이 안내까지 해 주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영화예매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 앞에 섰다. 어떤 부분을 터치해야 하는지 순간 캄캄했지만 온 정신을 집중해 한 단계씩 진행했다. 맨 마지막으로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는 창이 떴다. 010-xxxx-0709 가운데 네 자리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핸드폰 번호 입력 창을 띄워놓고 머리를 쥐어짜 본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핸드폰 번호를 생각해내야 하는 이 상황의 아이러니함, 핸드폰 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기억력에 대한 어이없음, 이 모든 것이 대충 고른 귀걸이 때문인 것 같다는 때늦은 후회들로 머리는 가득 찬다.     

 

그때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5관, 10시 40분, ⌜아네트⌟ 입장해주세요.”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는 그녀의 손가락이 분주해진다. 분주했던 손가락은 [다시 입력해주십시오]라는 안내 창에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그냥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 화면 위로 익숙한 핸드폰이 불쑥 나타난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남자가 본인의 핸드폰을 들고 있다.      


“아. 이거……”     


‘지하철에 놓고 내리셨죠?’라든가 ‘핸드폰 주인 맞으세요?’라는 말도 없이 그저 핸드폰을 건네고만 있다. 그런 그와 다를 바 없이 그녀 역시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오셨어요?’라든가 ‘찾아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인사치레도 없이 그냥 서 있다. 상영관 입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한 번 더 들린다. 


“아 제가 영화를 예매해놔서……감사합니다.”     


그냥 이렇게 핸드폰만 받아오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으면서도 이미 입장을 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게 평상시와 다른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영화 시작 직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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