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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08. 2022

161021-05

소리의 기억



콜라를 마시고 나초를 한입 깨물어 보았지만 이미 시작한 영화에 도무지 집중이  된다. 머릿속엔  가지 생각뿐이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다시 정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사례를 해야 할까? 분명히 내가 내린 후에 핸드폰은 바닥에 떨어진  지하철이 출발했는데  사람이 어떻게 찾아왔지? 예정에 없던 어떤 남자의 등장은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설렘의 두근거림이 아닌 피하고 싶은 죄책감의 두근거림.      


여중 여고를 나왔고 대학은 다니지 않았으며 정식으로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동호회 활동을 한 적도 없지만 평균 이상의 키, 호리한 체격, 깨끗한 외모의 그녀에게 다가왔던 남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녀가 한창 예뻤을 나이, 아직 엄마와 함께 살던 그 시절. 엄마는 동네 작은 시장 안에서 각종 전을 구워 파는 일을 했었다. 주로 입구에서 전을 골라 사가는 아주머니들이 손님의 대부분이었고, 2인용 테이블 2개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던 안쪽에 가끔 전과 함께 막걸리를 드시는 아저씨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새벽부터 나가 밤늦게까지 시장 전체가 쉬는 날 외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좁은 곳에서 기름 냄새에 절어 살았던 엄마. 그녀는 항상 엄마를 돕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했었다.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두 명이서 일하기에는 오히려 불편하다면서. 그래도 엄마는 시장에서 고생하는데 자기 혼자 집에서 편히 있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던 그녀는 거의 매일 밤 10시쯤이 되면 그곳에 가서 장사 마무리를 돕고 엄마의 짐을 들고 함께 집으로 오곤 했다.     


엄마의 전집 맞은편에는 그 시장 안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과일가게가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시장 저쪽으로 간 사이 과일가게 청년이 그녀에게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집에 가서 어머니랑 드세요.” 참외 2개였다.     


그날부터 그 청년은 그녀의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과일을 조금씩 주곤 했다. 어떤 날은 사과 2개, 어떤 날은 홍시 3개, 어떤 날은 배 1개. 딱 엄마와 둘이 그날 밤 또는 다음 날 아침 먹기에 적당한 양으로 그날의 과일 중 제일 맛있는 것을 골라 주곤 했다.      


그렇게 늦여름에서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로 접어들 무렵,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쩌지, 나는 뭘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그날도 그 청년은 봉지를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저기 혹시……” 엄마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녀가 삼킨 말은 ‘영화 좋아하세요?’였다. 그런데 그날 집에 가서 봉지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귤 5개와 영화티켓 2장이 들어있었다. 그날 이후 그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조조영화를 함께 봤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났을까, 그들이 함께 본 영화가 어느덧 20편이 훌쩍 넘었을 때, 그가 다음번 시장이 쉬는 날 함께 놀이공원을 가자고 했다.      


고등학교 때 소풍으로 딱 한번 가봤던 놀이공원. 그녀도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보통 시장이 쉬는 날에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납골당에 갔다가 오빠를 만나 저녁을 먹곤 했다. 그날은 엄마에게 약속이 있다며 다음번 쉬는 날에 아빠도 만나고 오빠도 만나자고 오늘은 집에서 푹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놀이공원 데이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침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 그녀가 과일가게 청년과 솜사탕도 먹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회전목마도 타고 있을 동안 엄마는 혼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아빠를 만난 후 오빠를 만나러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엄마는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점차 청력을 잃어 몇 년 전부터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즈음부터는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얘기를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빠졌다.      


사고 직후 오빠에게 연락이 갔고 오빠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다. 경찰에게 들은 사고 경위는 빨간불인데 횡단보도를 건너다 좌회전하는 차량에 부딪혔단다. 사고 차량은 처음에는 엄마가 안보였다가 이미 코너를 돌고 있는데 발견해서 경적을 울렸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 당시 엄마에게는 경적소리도 그저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 아니면 아예 무음이었나 보다.      


오빠는 시장 쉬는 날 왜 엄마 혼자 여기까지 오게 했냐고 그녀를 다그쳤다. 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놀이공원에서 핑크색 솜사탕을 먹고 있었다고, 난생처음 노란색 가발을 쓴 채 스티커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화려한 불빛과 아름다운 멜로디에 취해 회전목마를 타고 있었다고.     

 

그날 이후, 엄마가 하던 전집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그녀는 시장을 갈 일도 과일가게 청년을 다시 만날 일도 없었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엄마가 쉬는 날, 자신이 옆에 있어주지 못해 사고를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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