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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09. 2022

161021-06

소리의 기억



141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녀의 눈은 스크린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은 엄마와 과일가게 청년과 조금 전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 준 낯선 남자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가고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영화가 끝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직원이 들어와 쓰레기 정리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관을 나왔다.      


상영관 입구에는 어떤 남자가 서 있었고 가장 늦게 나오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바로 시선을 돌리고 지하철 역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기요~”

“네?”

“그래도 핸드폰 찾아줬는데 커피라도 한잔 사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따지듯이 묻는 말투가 아니고 웃음을 머금은 다정한 말투다. 핸드폰을 찾아줬다면 아까 그 사람이라는 건대 이상하다. 아까 분명히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는 얼굴이 너무 낯설다. 생각해보니 아까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하기가 힘들었나 보다. 영화관 내 카페에 가서 커피 2잔을 시켜 자리에 앉는다. 막상 함께 앉기는 했지만 커피를 다 마실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아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녀의 이 질문 이후로 그들의 대화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대화라기보다는 주로 그가 말을 하고 그녀는 가끔씩 간단히 대답하거나 “아……”, “그래요?” 와 같은 추임새만 했을 뿐이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그녀가 내리면서 핸드폰을 떨어뜨려 맞은편에 앉아있던 자신이 봤는데 이미 지하철 문이 닫혀 우선 핸드폰을 집어보니 때마침 영화 예약 어플에서 알림이 왔고, 그래서 바로 다음 정거장에 내려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으로 와서 둘러보다 그녀를 발견하고 핸드폰을 건네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심하게 받아서 좀 황당하기도 했고 마침 자신도 보고 싶던 영화여서 바로 예매를 하고 그녀 옆 옆자리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도 끝나고 난 뒤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그래도 커피 한잔은 얻어먹어야겠다 싶어 그녀를 불렀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영화에 대한 그의 감상과 관련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 자신은 영화평론가가 꿈이며, 블로그에 꾸준히 감상평을 올리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은 편이라는 이야기들로 그의 입은 쉴 줄을 몰랐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사실은 지하철에 탔을 때, 그녀를 봤는데 귀걸이가 예뻐서 계속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핸드폰을 떨어뜨린 것도 바로 알 수 있었고, 마침 영화 내역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자신이 보고 싶었던 영화인걸 보고 운명까지는 아니지만 자신과 통하는 면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까지 했다.      


그녀의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거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녀의 번호를 저장하고 나서야 그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가고 나서 한참 동안 그녀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작업을 할 때 자신이 녹음한 목소리를 5시간이고 10시간이고 번역이 완료될 때까지 듣고 또 듣는 것 외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2시간 동안 내리 들은 것이 거의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잘 듣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말도 어눌했다. 그런 엄마와 일상적인 간단한 말 외에는 주고받은 적이 없었고, 아빠나 오빠와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기억이 없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2시간 동안 들은 것이 처음이었는데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번역 작업을 할 때처럼. 


그의 목소리를 또 듣고 싶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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