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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13. 2022

161021-10

소리의 기억



그제야 생각이 난다. 그와 만나기로 했던 날, 자신이 핸드폰을 잃어버렸고, 그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빠 손에서 급히 핸드폰을 뺏어 온다.      


처음 같이 본 영화로 그를 기억하기 위해 아네트로 저장을 해 두었었다. 벚꽃 축제를 가기로 한 그날 문자를 확인해 본다.      


  미안해요. 지금 가는 중인데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다음에 내려요. 전화했더니 안 받네요. 도착했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여의나루역에서 못 내렸어요. 

  다음 역에 내려서 뛰어갈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그 문자로 끝이다. 그리고 3일 뒤에 다시 문자가 와있다. 

    

  준영이 누나입니다. 준영이가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던 사람인 것 같아서, 그날 만나기로 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래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합니다. 아마도 그날 여의도역에 내려서 여의나루역으로 가던 길에 사고를 당한 것 같네요. 신호가 얼마 안 남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좌회전하던 차에 치었어요.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있어요. 문자 보면 연락 주세요.       


그날로부터 3일 뒤. 달력을 보니 벌써 10일 전이다. 2주나 흘렀구나. 아네트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한준영 씨 핸드폰입니다.”

“아 저는 문자를 받았던 사람인데요. 혹시 준영 씨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아……통화가 좀 힘들 것 같아요.”

“자고 있나요?”

“아뇨, 깨어 있는데 말을 못 해요.”     


그날 그 사고로 그는 머리를 크게 다쳐 말을 못 하게 되었다. 그녀와 만날 때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던 그였는데. 그가 내는 소리가 좋아서 녹음까지 해서 집에서 들었었는데. 그 소리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심한 두통도 잊고 잠들 수 있었는데.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는 여의도역에 내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그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 모습은 마치 8년 전, 오빠를 보러 가던 엄마의 모습과도 닮았다. 하루에도 몇 백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 그로 인해 매일 열 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지만 엄마에 이어 그의 사고마저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 그녀는 견딜 수가 없다.     

 

지하철역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에게 괜찮다고 천천히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면. 아니면 그가 핸드폰을 찾아줬던 그날 함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면.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귀걸이 보관대로 갔다. 그리고 벚꽃 축제를 보기로 한 날 했던 흰색 원 안에 살구색 큐빅들이 촘촘히 박힌 귀걸이 위에 <여의도 벚꽃축제>라고 적었다.      


그녀의 귀걸이 위에 무언가 적힌 것은 이제 총 13개이다. 그중 8개가 그와의 추억이고 그중 5개의 추억은 음성파일로 남겨져 있다. 보다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이, 보다 많은 음성을 녹음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 그녀의 기억 속에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은 귀걸이와 함께 음성 파일로 선명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는 내일부터 매일 새로운 귀걸이를 하고 그에게 문병을 가서 그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며 둘만의 기억을, 그녀에게 남겨진 그의 소리의 기억을 추억할 것이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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