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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27. 2022

161115-01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소변이 마려워서 잠을 깼다. 아니 잠을 깨고 보니 소변이 마려웠다. 아무튼 화장실을 다녀오니 배가 고팠다. 시계를 보니 12시. 어제 아니 오늘 아침 5시 30분쯤 잠들었으니 적당히 잔셈이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일단 뭘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뭘 먹지? 커피에 식빵은 어제 먹었고, 라면은 계란이 없어서 안 될 것 같고. 아 며칠 전에 큰맘 먹고 만들어 먹었던 카레가 남아있지. 카레랑 밥이랑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크게 귀찮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밥에 카레를 부어서 같이 데울까 하다 그마저도 귀찮아 밥을 먼저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밥이 데워지는 동안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카레는 전자레인지 말고 가스레인지에 중탕으로 데워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냄비를 꺼내 물을 조금 붓고 카레가 담긴 그릇을 넣고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제일 센 불로 했다가 혹시 몰라 중간 불로 바꿨다. 그러는 사이 밥이 다 데워졌다는 소리가 났다. 카레가 데워지려면 한참 남았는데 괜히 중탕을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레인지이지만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과 가스레인지에 데우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은 간편하고 빨리 끝나지만 음식이 데워진 속도만큼 식는 속도도 빨라 다 먹기도 전에 오히려 데우기 전보다 더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스레인지에 데우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온도가 오래 유지되어 다 먹을 때까지 촉촉하고 따뜻한 상태로 음식을 음미할 수 있다.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티비를 켰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하다 딱히 할 것도 없어 받았다. 어제 온 택배를 빨리 찾아가라는 짜증 섞인 경비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처 다 대답하기도 전에 인터폰은 끊긴다. 순간 나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라 택배를 찾으러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가 그러면 다음번에는 더 짜증 난 경비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아 마음을 바꿨다. 그러고 보니 어제 엄마의 문자가 생각났다. 배추김치, 파김치, 갓김치를 조금씩 보냈으니 챙겨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매년 이맘때 느끼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다.



카레랑 먹으면 안성맞춤일  같아 카레가 데워지는 동안 빨리 가서 찾아오기로 했다. 모자 달린 패딩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가 사는 곳은 17. 마침 엘리베이터가 15층에 있었다. 서둘러 타고 1층을 눌렀다. 내려가는 동안 배추김치, 파김치, 갓김치 중에 어떤 김치가 카레에 가장  어울릴지 생각해 보았다.



배추김치는 아무래도 라면에  어울릴  같았고, 파김치와 갓김치 중에 고민을 했다. 그러다 엄마가 작년처럼 박스  개에 하나는 배추김치 가득, 하나는 파김치와 갓김치 반반씩 보냈다면 포장을 뜯어봐야 무슨 김치 일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제일 먼저 뜯은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김치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덜컹하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열리지 않았다. 열림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틀렸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층을 알리는 숫자를 보니 5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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