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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28. 2022

161115-02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간혹 뉴스에서 승강기 고장 사고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TV 안전 프로그램을 통해 승강기 안전사고 발생 시 대처요령을 접한 적도 있지만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은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롭고 낯선 것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것을 선호하는 나의 성향 상 난생처음 경험하는 승강기 멈춤의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 상황은 여러 번 접해보더라도 매번 당황스럽거나 아무리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긴 하겠지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 속에 들어 있는 카레 한 그릇이었다.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울 걸 뭣 하러 오늘따라 중탕으로 데워 먹을 생각을 했는지 불과 몇 분 전의 나의 선택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그 원망은 딱 그 순간에 인터폰을 한 경비아저씨에게로 옮겨갔다. 조금만 더 늦게 인터폰을 했다면 카레를 불 위에 올려놓은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카레를 맛있는 김치와 함께 먹는 호사도 누리지 못했겠지만.



김치가 떠오르자 굳이 어제 김치를 보낸 엄마까지 원망스러워졌다. 11월 중순에 친구들과 3박 4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작년보다 열흘이나 빨리 김장을 한다고 했었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해 원망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 원망하고 나니 그제야 5층이면 높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해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숫자에는 약한 나였지만 비상사태여서 그런지 머릿속에서 계산이 빠른 속도로 되었다. 전구를 갈 때 식탁 의자를 놓고 올라가면 정수리에서 천장까지 30cm 정도 남았으니 내 키에 식탁 의자 다리 길이에 30을 더한 후 5를 곱하면 약 11.5m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람이 제일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m라던데 왜 하필 그 높이에 내가 떠 있는 것인지 그 와중에 신기하기도 했다.



혹시 엘리베이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대로 추락할 경우 나는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떨어지는 순간은 알 수 있으니 바닥에 닿기 직전에 허리 높이에 있는 안전 바를 잡고 다리를 그 위로 올리면 내 몸에 닿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걸까? 그런데 나의 예상보다 더 빨리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닿아 내가 미처 다리를 올리지 못했는데 바닥이 솟아오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핸드폰을 챙겨 나오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도 바깥도 심하게 조용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TV에서 배운 대로 버튼들 중에 빨간색 종이 그려진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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