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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29. 2022

161115-03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역시 한번 만에 연결이 안 되었다. 다시 한번 조금 더 세게 더 오래 눌러보았다.


네, 경비실입니다.


살짝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리실이 아니고 경비실? 원래 비상버튼을 누르면 경비실로 연결이 되는 건가? 아 조금 전에 나에게 인터폰을 해서 김치를 가져가라고 했던 그 아저씨구나.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끊었던 그 아저씨.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두 번째 원망의 대상이었던 그 아저씨. 왠지 이번에도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끊어버릴 것 같아 입이 안 떨어졌다. 하지만 혼자만의 감정싸움을 할 때는 아니었다.


네, 1702호예요.

네? 1702호요? 네. 아, 택배 빨리 가져가라니까요.

네, 그래서 택배 가지러 가는 중에 지금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뭐라고요?

엘리베이터가 멈췄다고요.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해봐요. 뭐라고요?


아니 1702호라는 말은 잘 들어놓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는 말은 잘 안 들리는 건 무슨 상황일까? 내가 택배를 빨리 안 찾아가서 일부러 안 들리는 척하는 건가? 사실은 이미 엘리베이터가 멈춘 걸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비상버튼을 누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역시나 지금은 경비아저씨의 나에 대한 감정이나 그에 따른 비합리적인 행동을 분석해보고 있을 때는 아니다. 비상버튼 근처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곳에 입을 갖다 대고 크게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췄다고요!!

아 그래요? 지금 관리실에 사람이 없어서 여기로 연결이 된 모양인데.


그렇지, 원래 비상버튼을 누르면 경비실이 아니라 관리실로 연결이 되는 거지. 그런데 왜 관리실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101동이죠?

아니요, 102동 1702호요.

지금 식사하러 가서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연락해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요.

네? 얼마나 걸릴까요?

뭐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네, 아 그런데 저희 집에.. 뚝.


역시 내 말을 다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또 확 상했지만 최대한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려보니 빨리 관리실 직원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끊은 것이리라 싶다. 그래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안전하게 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정상 운행을 하는 것이니까.


그 순간 갑자기 1층부터 25층까지 층마다 2가구씩, 작은 평수여서 평균 2명이 산다고 가정하면 약 100명의 사람이 102동을 들락날락할 텐데 100명 중에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 1층이나 아니면 자신이 살고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의 위나 아래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안전한 상황은 이런 경우에 자동으로 오작동을 감지해서 다른 층에서 버튼을 눌러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겠지만, 아파트는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엘리베이터가 꽤나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거울이 없는 면에 부착되어 있는 게시판에 붙은 엘리베이터 교체 안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노후하여 새것으로 교체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11월 10일 10시~17시 사이에는 불편하더라도 계단을 이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11월 8일인가 9일인가? 아무튼 교체해야 될 만큼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는 것은 부정적인 정보임에는 틀림없었다.


부질없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림 버튼을 눌러보았다.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더 부질없을 것 같았지만 내가 누를 수 있는 버튼은 빨간색 종 모양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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