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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30. 2022

161115-04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네, 경비실입니다.

아, 저 1702호인데요.

아 좀 전에 통화되었어요, 금방 온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네, 얼마나 걸릴까요?

5분이면 될 거 에요.

5분이요? 지금 몇 시죠?

지금이.. 12시 15분이요.

네,, 혹시 오늘이 며칠이죠?

오늘이.. 11월 9일이요.



아 그럼 내일이 엘리베이터 교체하는 날이구나.



금방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네.. 혹시.. 뚝.



이제는 뭐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사무치게 외로울 뿐이었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아 카레!! 지금 12시 15분이라고? 생각보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 지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센 불에서 중간 불로 바꿨던 나의 선택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중간 불에서 10분 이상 물을 끓이면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되었다. 카레를 담은 그릇이 얕고 넓은 그릇이어서 냄비에 물을 3cm 정도만 부었었다. 그 정도의 물이면 왠지 벌써 끓었을 것 같다. 이미 끓기 시작한 이후로도 계속 불 위의 냄비 속에 그릇이 있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런 상황에 대한 간접경험밖에 없었다. 드라마 같은 데서 가끔 아주머니들이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것을 깜빡하고 있다가 타는 냄새가 나서 황급히 주방으로 가보면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와 연기로 가득 찬 가스레인지 주변, 그리고 그 냄비를 손으로 만지다 너무 뜨거워서 바닥으로 떨어트리며 손과 발을 데는 모습.



아니면 정말 드물지만 뉴스를 통해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외출했다가 집이 홀랑 불에 타서 소방차가 출동하고 위아래층 사람들이 대피하는 장면.



때로는 간접경험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그 두 가지 장면이 마치 지금 나의 집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인 것만 같았다. 냄비 속의 카레는 이미 시커메졌고 냄비 주변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며 그 불은 가스레인지 옆에 있던 키친타월로 빠르게 옮겨 붙고 있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다시 세 번째로 비상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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