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네, 관리실입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당황했다.
아, 저 1702호인데요.
네~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죠? 지금 102동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급히 가봐야 하는데요.
아 제가 그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인데요.
아 그래요? 놀라셨죠?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서 살펴볼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놀라셨죠?라는 말에 그리고 경비 아저씨보다 조금은 친절한 목소리에 내 마음이 살짝 따뜻해졌나 보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뚝.
아 따뜻해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 아파트 관리인들의 컨셉인가? 상대방의 말을 다 듣기 전에 끊는 것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지금 엘리베이터를 고치러 오려는 사람에게 우리 집에 들어가서 가스레인지의 불을 꺼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 한 번에 두 가지의 일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은 그 경비아저씨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상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조금 전의 그 사람이 막 나왔는데 내가 누른 버튼 때문에 다시 관리실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엘리베이터를 고치러 오는 시간이 늦어져 이상이 생기면 어쩌지? 잠시만 기다렸다가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그 잠시 동안 다시 불이 붙은 주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스레인지 주변에 키친타월 말고 또 뭐가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 가스레인지 왼편에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나무로 된 작은 트레이를 둔 것이 떠올랐다. 거기까지 불이 붙었다면 이건 정말 비상사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실이나 경비실이 아니라 119에 바로 연락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핸드폰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비상버튼을 눌렀을 때 관리실에 아까 그 사람이 없어서 경비실로 다시 연결이 되겠지?
네 번째로 비상버튼을 눌렀다.
한 번에 연결이 안 되었다. 침착할 수가 없었다. 비상버튼을 여러 번 연속해서 눌렀다.
네, 경비실입니다.
저기, 119 좀 불러주세요.
네? 무슨 일이신대요? 몇 호세요?
1702호요.
아, 전기기사님이 지금 손보고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저희 집에, 아무튼 119좀 불러주세요.
엘리베이터 안에 오래 있어서 힘든 것 같은데 금방 열릴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아, 아저씨, 그게 아니고 저희 집 가스레인지 좀 꺼주세요. 불을 켜놓고 나왔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