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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3. 2022

161115-06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네? 그걸 지금 얘기하면 어떡해요?

아,, 지금 빨리요.

아 알았어요. 1702호라고 했죠?

네. 빨리.. 뚝.


일단 한시름 놓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우리 집은 17층. 지금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으니 경비아저씨가 걸어서 17층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경비아저씨는 적어도 60대 중반에 날렵한 체격은 아니었다. 젊은 나도 17층까지는 한 번도 걸어 올라가 본 적도 없고 걸어 올라가라고 하면 꽤나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과연 60대 중반의 날렵하지 않은 체격의 경비 아저씨가 올라가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한 층을 20초로 잡아도 적어도 5분인데 분명 중간에 두어 번은 쉬어야 할 테고 그럼 넉넉히 10분을 잡아야 한다. 앞으로 10분 후면 주방은 물론이고 현관과 화장실, 거실까지 모두 다 타버릴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119에 연락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섯 번째 비상버튼을 눌러본다. 당연히 응답이 없다.


전기기사는 지금 어디선가 엘리베이터를 살펴보고 있을 테고 경비아저씨는 지금쯤 2층이나 3층을 오르고 있을까? 두 명의 사람이 나와 나의 카레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대도 불안하기만 하다. 1초가 1분 아니 1시간 같이 느껴졌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시간이 참 더디게 가는 것 같아’라고 말했던 모든 순간이 다 우스워졌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은 느낌은 바로 이런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뉴스나 드라마에서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것을 잊어버린 아주머니를 한 편으로 한심하게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분들도 지금의 나처럼 그 사실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덜컹했다.


나도 모르게 아까 생각한 대로 안전바를 두 손으로 힘주어 잡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덜컹만 했을 뿐 추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재빨리 다리를 내렸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들리세요?

네, 들려요.

아 지금 엘리베이터가 6층과 5층 사이에 멈춰 있어요. 그래서 엘리베이터 천장을 열고 그 위로 올라와서 6층으로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네? 천장이요?

네 천장에 보면..

아 그냥 내려와 주시면 안 돼요?

그게 혹시라도 좀 위험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네? 왜요?

제가 여기서 엘리베이터 위로 올라가면 무게 때문에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그럼 진짜 추락할 수도 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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