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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4. 2022

161115-07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아 나는 그냥 중탕으로 속속들이 촉촉이 잘 데워진 카레를 엄마가 보내준 김치와 먹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게 욕심이었나. 엘리베이터 천장을 열고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이대로 있다가 엘리베이터와 함께 추락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아까 그 안전바를 짚고 올라섰다. 다행히 천장에 손이 닿긴 했다. 그런데 천장을 어떻게 열지? 손으로 툭툭 쳐봤는데 꿈쩍도 안 했다.


거기 말고 가운데 쪽을 조금 더 세게 쳐볼래요?


가운데 쪽까지는 손이 쉽게 닿지는 않았다.


위에서 열어주실 수는 없나요? 손이 잘 안 닿아요.

키가 작으신 편인가 봐요? 잠시만요.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나의 키를 왜 문제 삼는 것이지? 내 키가 평균보다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방금 저 말은 마치 내가 지금 이곳에 갇혀서 못 나오는 이유가 나의 키 때문이라는 것처럼 들려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러는 자기는 키가 얼마나 크기에 저렇게 말을 하지? 나가자마자 전기기사의 키부터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바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위에서 고리 같은 걸 걸어서 당기는 소리가 났다.


저기요, 너무 힘든데 빨리 좀 열어주세요.

아, 내려가 있으세요. 열리면 다시 올라오면 됩니다. 


진작 얘기해주지. 혹시라도 내가 내려오는 동작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추락이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어 조심조심 한발 한발 엘리베이터 바닥으로 발을 내려놓았다. 두 발을 겨우 바닥에 대자마자 천장에 네모난 구멍 같은 것이 생겼다.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니 굵은 밧줄 같은 것이 여러 개 위로 뻗어 있었다. 아 저게 엘리베이터를 지탱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면 위로 아래로 움직이게 해주는 줄이구나.


다시 올라와서 그 구멍으로 나올 수 있겠어요?


내가 나올 수 없다고 하면 다른 방법이 있나? ‘다시 올라와서 그 구멍으로 나오세요’라고 해야지. 다시 조심조심 안전바를 짚고 올라서서 천장의 구멍으로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윗면을 꽉 잡았다. 이미 발은 안전바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두 손에 온 힘을 주어 발을 떼고 몸을 위로 올렸다. 상반신을 올리자 엘리베이터 안과는 다른 공기에 크게 숨을 들이쉬게 되었다. 들이쉬는 도중에 이미 다른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무릎을 올리고 몸 전체를 엘리베이터 위로 올려야 했다. 한쪽 무릎을 위로 올리는데 엘리베이터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 이거 왜 흔들려요,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빨리 올라오세요.


나도 빨리 하고 싶어요. 지금 나만큼 급한 사람이 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균보다 작은 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 순간은 평균보다 많이 적은 몸무게가 감사할 지경이다. 겨우겨우 몸을 구멍 밖으로 올려 보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을 들어보니 전기기사의 모습과 그 뒤로 아파트의 계단과 그 뒤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보였다.


전기기사는 몸을 엎드린 채 손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는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모습이 꽤나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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