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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12. 2022

161021-09

소리의 기억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에서 6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즈음에는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직전 스스로 해제하는 것도 외출하기 전 날 냉동실의 떡을 미리 꺼내어 놓는 것도 힘든 일이 되었다.      


알람이 울린 뒤 한참 뒤에야 힘들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샤워를 한 후 머리를 말리는 것을 잊은 채 귀걸이 보관대 앞에 섰다. 벚꽃에 어울리게 흰색 원 안에 살구색 큐빅들이 촘촘히 박힌 귀걸이를 선택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귀걸이에 맞는 옷이 무엇인지는 잊지 않았다. 흰색 주름치마에 연한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고 흰색 가방에 흰색 샌들을 신었다.      


평일은 주말보다는 사람이 적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지하철 5호선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여의나루역에 도착했고 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우겨우 사람들에게 밀려 지하철 문을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 1번 출구로 나왔다. 그에게 문자를 하려고 핸드폰을 찾았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아까 급하게 내릴 때 지난번처럼 떨어뜨렸던 것이다.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여기 있으면 오겠지 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여의나루역 1번 출구로 나오고 들어가고 했다. 그녀는 처음 그 자리에 같은 자세로 계속 서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환했던 주변이 어느새 캄캄해졌다. 야간에도 벚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여의나루역 1번 출구는 여전히 붐볐다. 밤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인파도 11시가 다 되어 가니 어느새 뚝 끊겼다.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계속 서 있었던 그녀는 그제야 춥고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서 있으면서 그녀는 내심 기대했었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나타날 것이라고. 그럼 함께 벚꽃을 보고 저녁을 먹으며 그의 음성을 녹음하고 집에 돌아가 오늘 했던 귀걸이 위에 <여의도 벚꽃축제>라고 써야겠다고.      


하지만 그날 그도 그녀의 핸드폰도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며칠 뒤 택배로 도착했다. 다행히 누군가 착한 사람이 주워 우체통에 넣었거나 경찰서에 갖다줬나보다. 하지만 그는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무성한 벚꽃 나무를 눈앞에 두고 결국 벚꽃은 보지 못한 채 허기와 한기에 덜덜 떨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 이후, 그녀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번역 작업을 예전의 1/4로 줄였지만 그마저도 힘들었고, 선명하게 깨어있는 시간보다 희미하게 누워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갔다. 그나마 녹음해 놓은 그의 음성을 틀어놔야만 얕은 잠이라도 들 수가 있었다. 핸드폰을 택배로 받아놓고 충전해서 켜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며칠이 더 흘렀다.      


급기야 어느 날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비몽사몽 상태에 있던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오빠였다.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핸드폰을 왜 꺼놨어?”

“아 핸드폰. 꺼져 있었어?”

“번역도 많이 안 하고, 너 진짜 무슨 일 있니?”

“아니야. 요즘 좀 피곤해서 그래.”

“핸드폰은 어디 있어?”     


오빠는 핸드폰을 찾아 충전을 시키고 잠시 후에 핸드폰을 켰다. 부팅이 되자마자 쉴 새 없이 문자 알림이 울린다. 핸드폰을 보던 오빠가 묻는다.      


“아네트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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