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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20. 2022

해외여행 vs 해외살이

한 달 살이 며칠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D-4     


딸의 카톡 프로필이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음을 알려준다. 딸과 나의 첫 (해외) 한달살이가 4일 후면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나의 해외살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여름, 호주에서 2개월을 산 적이 있다.  

    

해외 ‘여행’이 아니라 ‘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머무는 기간? 머무는 장소? 함께하는 일행? 무엇을 하느냐?      


그래도 나름 (해외) 여행을 적게 해 본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 나름대로 여행과 살이를 구분해 보려 한다.



      

첫 번째, 머무는 기간.


한 달 이내면 여행이고 한 달 이상이면 살이일까? 하지만 ‘보름 살이’라는 말도 있고, 그렇게 따지면 기간 뒤에 살이를 붙이면 ‘열흘 살이’, ‘5일 살이’, ‘하루 살이’가 말이 안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나온 것을 후회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의 선택 중에 후회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못해본 것이다. 보름 또는 한 달 동안 유럽의 10여 개 국을 겉핥기식으로 훑고 오는 그런 것을 그 당시 나는 여행이라고 쳐주지 않았었다. 내 친구들이 돌아가며 배낭여행을 떠날 때면 나는 나중에 적어도 일주일 씩 한 도시씩 찬찬히 둘러볼 거고 그런 게 진정한 여행이라고 선포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생각한 여행은 실제로는 실행하기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아무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 기준으로는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한 도시에 머물러야 그래도 ‘살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기준에 의하면 이번에 나와 딸은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특정 지역에서만 약 4주 동안 머물 예정이니 여행보다는 살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 머무는 장소.    

 

나의 첫 해외 살이는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였다. 같은 대학교의 후배와 현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문자 그대로 현지의 문화를 많이 체험하고 나름 한국의 문화도 조금 전파했었다.

      

이번 발리행을 준비하며, 한 동안 에어비앤비에 수영장 딸린 독채를 엄청 검색했었다. 사실 여행이 아니라 살이가 되려면 호텔이 아닌 현지의 집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정과 결정의 어려움 등에 굴복해 우리는 4주 내내 2군데 호텔에서 머무르게 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번 발리행은 좀 긴 해외여행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함께하는 일행.     


나와 딸의 발리행을 두고 당연히 내 주변 사람들은 부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 달이 아니어도 좋으니 적어도 일주일만이라도 혼자 있어보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역시 대부분은 ‘배가 불렀다’고 할 테지만, 나는 딸이 조금만 더 크면 언제라도 혼자 떠날 마음의 준비만 되어있다.   

   

내가 꿈꾸는 혼자만의 여행 또는 살이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는 어울릴 수 있는 것. 혼자 트래킹을 하며 걷는 도중, 대화가 잘 통하는 누군가를 만나 그날 저녁을 함께 먹고, 그다음 날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또는 내가 어느 곳에 머무는 동안 마침 지인이 그곳으로 오게 되어 며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또 언젠가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여전히 나는 여행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나 보다.  

    

이번에 나는 딸과 말 그대로 24시간을 함께 할 예정이다. 물론 다행히(?)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딸은 또래들과 캠프에 참여할 거라 하루에 7시간 정도는 나만의 시간이 될 예정이지만 그 시간이 어떤 내용, 어떤 사람, 어떤 사건들로 채워질지는 아직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여행과 살이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 무엇을 하느냐?     


여행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그 장소의 최고의 맛집을 발견하는 것, 누군가는 그 지역의 문화유산을 눈에 담는 것, 누군가는 공연이나 축제 등에 참여해 현지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것, 누군가는 사진을 많이 찍는 것 등등.      


나는 여행을 통해, 이번 발리 한 달 살이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사실 발리 한 달 살이는 말레이시아 1년 살이의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1년 살이를 실컷 알아봤다가 결국에는 안 가는 것으로 결정을 한 후, 어디라도 떠나고 싶어 급조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뭐 한 달 동안 아이의 영어실력이 늘 것이라거나, 하다못해 현지의 문화를 많이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거나, 딸이든 나든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라는 등의 큰 기대는 없는 상태이다.      


딸은 한 달 동안 영어학원을 안 가도 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나도 실은 한 달 동안 일을 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뜨기는 한다. 앞으로 한 달 뒤 과연 내가 다시 땅에 발을 붙이고 이전처럼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아무튼 여행이었으면 아무리 ‘P유형’인 나도 그래도 있는 동안 여기 여기는 가봐야지 하고 알아보고 예약을 해두었을 텐데 4주 동안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서 알아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거의 알아본 게 없다.     

 

‘P유형’인 내 기준에서 대략이라도 일정을 미리 짜면 여행이고 아무 일정도 안 짜면 살이인가? 

    

그렇다면 이번 발리행은 살이가 확실하다.


  


그래도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떠나기 전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목록이 오늘 다 지워졌기 때문이다. 오늘 한 일은 약통 정리 및 비상약 구입, 은행에서 환전, 영문 백신접종증명서 및 그 외 서류들 출력, 로밍 신청이다. 그 외 다양한 일들을 최근 한 달여에 걸쳐 하나씩 하나씩 해나갔다.      


이제 남은 일은 캐리어를 채워 넣는 일이다. 캐리어에 넣을 것 목록은 ‘J유형’인 딸에게 작성해보라고 할 예정이다.      


발리에 있을 동안 딸과 공조하기로 한 것이 있다. 그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기를 바라며 오늘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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