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2018년 10월 1일의 나

by 나우히어
20220918211015.png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가져 갔던 책을 꺼내어 읽고 있었는데, 조금 뒤에 온 일행 중 한 명이 자신의 가방에서 꺼낸 책.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같은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동질감으로 인해 급속도로 그 사람과 가까워졌다. 그 사람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거론된 책이 루이제 린저의 데뷔작이었다. 1940년에 발표된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어떤 책을 알게 되는 것과 그것을 읽는 것이 항상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 못지않게 책을 갖고 싶은 욕구도 강한 나는 주로 책을 사서 보는 편인데, 한 번에 최소 5권 이상의 책을 주문하곤 하기 때문에 침대 옆 테이블에는 언제나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있다.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추진력이 강한 그 사람은 나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 루이제 린저의 처녀작을 빌렸다. 그리고 서문을 읽고는 바로 나에게 빌려주었다. 그렇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잔뜩인 가운데 예정에 없이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를 읽게 되었다.



사실 처녀작인 데다 - 누구든 처음은 어딘지 조금 부족하고 아쉬운 법이니까 - 내가 선호하지 않는 성장소설의 형식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작품 자체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구절은 꽤 있다. 그중에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은 다음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전부이다.


주인공이 사춘기 시절 만났던 한 선생님의 말. 그 말 이후 그 선생님은 주인공의 마음속을 꿰뚫고 주인공의 그리움에 언어를 부여하고 주인공에게 영혼의 갈등을 알려 주는 존재가 되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다는 것. 또는 나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두 가지 모두 의미 있고 나아가 가슴 떨리는 행위이다. 지금까지 나와 인연을 맺어왔던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분명히 있었을 테고 아주 많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런 순간에는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에 빗대어 “망각은 나의 힘”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곤 한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잘 잊어버리는 편이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대신 좋은 기억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진을 많이 찍어두고 그때그때 SNS에 올려놓아 내가 원하면 언제든 끄집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나쁜 기억, 잊고 싶은 기억을 다 잊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진정한 나일까? 그런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다 지운 척 살다 보니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이 한없이 가볍기만 한건 아닐까?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주인공처럼 나도 원점으로 돌아가 스스로 delete 버튼을 눌렀던 순간들을 다시 복구시킨다면 내가 쓰는 글들이 조금은 더 깊이 있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돌아가야 하는 원점은 어디? 태어난 시점? 아니면 처음으로 나쁜 기억이 생긴 시점? 아니면 나에게 가장 큰 상처로 남은 일이 있었던 때?



원점은 어디?를 쓸 때부터 이미 알았다. "망각은 나의 힘"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단 하나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꿈속에서 울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어서도 계속 눈물이 흐를" 때가 있음을. 그럴 때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고 불러지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다시 잠을 자기가 너무 어려워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할 때가 있음을.



결국 나를 전부 기억하는 존재는 오로지 나뿐이라는 것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