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018년 10월 11일의 나

by 나우히어


오랫동안 도서 주문페이지의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책이었다. 처음 장바구니에 담게 된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된 작품이고 원래 알던 작가도 아니니 아마도 우연한 기회에 나의 책 그물망에 걸려들었고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해서 담아뒀던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품의 첫 문장이자 많은 이들이 명문장으로 꼽는 한 문장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따라가며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76p)


나는 마음속으로 태어났을 적에 내가 얻은 그 이름을, 내 생애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불렀던 그 이름을, 어떤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환기시켜주었던 그 이름을 스스로 되뇌어보았다.(101p)


그 여자가 나에게 이 질문을 어찌나 강요하는 듯한 어조로 물어왔는지 나는 처음으로 절망감에, 아니 절망감보다도 더한 감정, 모든 노력, 모든 유리한 점, 모든 선의에도 불구하고 넘을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느껴지는 그런 충격에 사로잡혔다.(121p)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183p)



나는 위의 네 문장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다. 해변을 따라 거닐어 본 사람이라면, 불리워지는 이름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가장 높고 견고한 장애물은 대부분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최근에 이렇게 책과 관련된 나만의 글을 쓰면서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 될 것 같아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는데, 바로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의 목록을 정리하는 일이다.


약 13여 년 전, 대학원 석사논문을 메타분석으로 썼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내가 좋아하는 엑셀을 켜고 장르, 제목, 작가, 출판 연도 등의 항목을 만들어 칸을 채워보고 싶다. 그리고 제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장 많이 읽은 작가 순, 출판 연도 순 등으로 정리해보고 싶다.


그것이 정말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말 그대로 ‘그동안’ 내가 읽은 ‘모든’ 책이 담겨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지금 집에 있는 책이라도 해보고 싶다. 나는 비록 작품 속 주인공처럼 기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었던 책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남기고 그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자신을 아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인식. 나부터 나를 인식하자. 나부터 나를 알자.


하지만 “무엇을 결심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톨스토이가 말한 데는 역시 이유가 있다. 과연 내가 언제 실천에 옮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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