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8일의 나
죽음이 없었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전혀 없었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이 모든 일은 한순간에 일어났으며, 이 한순간의 의미는 이제 변하지 않았다.
아직은 어렵다.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죽음 뒤의 삶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예측해보기에는 아직은 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오래 울림이 남을 것 같은 작품이다. 언제가 되었든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이 작품을 알게 되었으니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선택으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있는데, 나중에 내공이 더 쌓인다면 두 작품을 또는 삶과 죽음을 다룬 작품들을 한데 모아 비교 분석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고 싶은 건 언제나 참 많은 나다.
다시 이 작품으로 돌아와 이반 일리치 골로빈이라는 인물에 집중해보면, 삶은 외로웠으나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기쁨을 깨달은 어찌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게 기쁠 수가!”였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나의 죽음의 순간을 그려볼 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잃지 않을 것,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 이 두 가지이다. 이반 일리치 골로빈은 적어도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생생히 의식하고 그 와중에 크나큰 깨달음까지 얻었다는 점에서 소설 속 인물이지만 한편 부럽기까지 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마지막에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이다. 정말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촛불처럼 다른 모든 것을 환히 밝히는 기쁨에 대한 경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으며 그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그저 가엾게 여겨 준 사람(게라심)의 존재.
나에게는 그 3가지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꼭 3가지일 필요는 없다. 딱 하나여도, 10개여도 상관없다. 있기만 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누릴 수만 있다면 내 삶도 행복한 삶으로 적어도 나에게만은 기억될 수 있겠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자조적인 어투로 “죽어야 끝나”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놀란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부연설명을 하면 그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반 일리치 골로빈의 마지막 말은 “이렇게 기쁠 수가!”였지만 마지막 생각은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였다. 죽어야 끝난다는 나의 생각과 끝난 건 죽음일 뿐이라는 톨스토이의 생각에는 어찌 보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