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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11. 2022

싸웠어도 밥은 같이 먹습니다

우리는 가족인가 식구인가


 

식구(食口) :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가족(家族)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어제, 2주 연속 이어진 토일월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 오전 11시에 정수기 아줌마가 온다고 하여 나는 10시쯤 일어나 아침 먹을 준비(갈치조림, 감자볶음, 돈까스)를 미리 해 놓았다. 아줌마는 시간 딱 맞춰 왔고 보통 20분즘 걸리니까 11시 20분에 아침 먹고 치우면 12시 30분 수업 전에 커피 한잔 할 여유는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제 따라 아줌마가 뭘 더 꼼꼼히 봐주신 건지 뭔지 평소의 두배의 시간이 소요되어 11시 40분에야 우리는 휴일 아점을 먹게 되었다.      


갈치조림은 아이 포함 모두 좋아하는 반찬이고, 10시 반~11시 사이에 먹는 평소 휴일 아침보다 늦은 시각이어서 보통 때보다 밥을 조금 많이 담았다. 그런데 자기 관리 차원(40대 후반의 나이에 뱃살이 거의 안 나온 것은 자기 관리의 결과인 건 나도 안다)에서 집에서 밥을 심지어 초등학교 5학년 딸보다 적게 먹는 남편은 밥 양을 보자마자 약간의 인상을 쓰며 많다고 덜어먹을 그릇을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아빠가 그러자 덩달아 딸도 자기도 많다고 덜겠다고 했다.      


순간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정수가 아줌마가 예상보다 늦게 가서 수업(사실 이 수업이 또 좀 짜증 나는 수업이기도 했다) 전에 잠깐 쉴 시간이 없어진 것 때문에 살짝 신경이 거슬렸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 무슨 못 볼걸 본 것 같은 남편의 표정과 자기는 자리에 앉아서 나보고 그릇을 가져오라는 그 태도가 나의 심기를 딱 건드렸다고나 할까.      


나도 참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그러면 안 되는데 기어코 한 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실컷 차렸는데 밥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지어야겠어?

  

사실 정확한 문장이 잘 기억이 안 난다. 솔직히 그 순간의 감정으로 치자면 내 속에서는 더한 말이 올라왔는데 그걸 삼키고 좀 순하게 표현하느라 그 와중에 머리를 굴렸던 거 같다.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남편이 내가 퍼 준 밥을 더는 상황.      


보통 12시쯤 수업이 있는 주말 아침. 아무런 일정도 없는 남편과 딸은 소파에 누워 티비를 틀어놓은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나는 아침 준비를 한다. 아침을 먹은 후 둘은 다시 소파로 가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둘에게 과일까지 주고 나서야 커피를 한잔 내려 수업하는 방으로 들어간다. 수업을 하면서 휴일 아침에 나만 계속 서 있고 둘은 앉아 아니 누워있는 그 상황을 털어내고 수업이 끝난 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거실로 간다.     

 

만약 이 상황이 주말 내내 3시 세끼 연속된다면 내가 너무 힘든 삶을 감내하며 희생하며 살아가는 워킹맘이겠지만, 이 풍경은 딱 주말 아침 한 끼에만 해당된다.    

  

내가 수업하는 동안 둘은 남은 오후를 뭐할지 계획을 세워두고 나갈 준비를 해두어 내가 수업이 끝난 후 외출을 해서 점심은 간식으로 때우고 저녁은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보통의 주말의 모습이다. 때로는 나 쉬라고 둘이서만 자전거를 타러 가거나 만화방을 가거나 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도 주말 아침 한 끼는 집밥을 같이 먹자는 마음으로 대부분은 별 탈 없이 준비를 한다.      


그런데 어제는 내 마음에 뭐가 더 들어앉아 있었는지 한 번만 참고 넘어갔으면 될 것을 굳이 한마디를 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렇게 냉랭하게 아침을 먹고 나는 내 할 일을 다하고 수업을 하고 나왔는데, 남편은 말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파에 누워 자고 있고 아이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딩굴딩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정말, 내가 그런 상황에서 앞뒤 재지 않고 소리부터 빽 지르는 사람이었다면 우리 가족의 모습은 진작 달라졌을까?     


그럴 때 나는 차분해진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가라앉는 편. 그렇게 자고 싶다면 방해 안 할 테니 실컷 자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딸만 데리고 나왔다.      


마침 요즘 다니는 골프연습장과 같은 건물에 고양이도 있고 만화도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딸 혼자 1시간 있으라고 하고 나는 연습장 가서 드라이버를 좀 휘두르다 만화방으로 내려갔다. 1시간 정도 더 딸과 시간을 보낸 후 다이소에 가서 작은 기쁨 몇 개를 사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남편은 연락 없음. 아니 내가 오후 내내 딸과 시간을 보냈는데(물론 1시간은 나만의 시간이었지만), 연락이 한통 없어? 드라이버를 휘두르며 조금은 가신 줄 알았던 스트레스가 다시 스물스물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으로 올해 남은 마지막 평일 휴일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에게 선톡을 보냈다.      


저녁 어쩔?   

  

그랬더니 역시 그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에 새로 생긴 스시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휴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싸웠어도(솔직히 싸운 게 아니지, 나 혼자 한마디 하고 끝), 감정이 상했어도, 상대 때문에 앙금이 남았어도, 때 되면 밥은 같이 먹는 게 가족인가.      


평소에도 남편과 톡 내용은 주로 (평일) 저녁을 먹고 오는지 일찍 오는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딸도 학원 때문에 5:30 즘 저녁을 일찍 먹어야 하는 월수금이나 학원이 끝나고 7:00 즘 먹는 화목이나 오늘 저녁은 뭐?라고 꼭 물어본다.         


가족의 다른 말은 식구. 식구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 가족의 모습은 딱 식구 그 자체인 것 같다. 식구도 아닌 가족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거라고 애써 위로를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나 역시 자기 관리 차원에서 먹는 행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다 보니 너무 가족들의 끼니에 무심해져 버린 것인지. 그래도 함께 밥이라도 먹는다는 것은 또 다른 것도 기꺼이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테니 너무 자조적으로 빠져들지는 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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