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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21. 2022

혼자 해서 좋은 것

나 홀로 등산 성공


     

약 한 달여 전 딸과 함께 검단산 정상에 올랐었다. 1년 전 도전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왔던 이후, 올해는 꼭 가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9월의 어느 주말 마침 날이 좋고 시간이 나서 다녀왔었다. 딸도 지난번에 끝까지 못 올라갔던 게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힘들어도 참으며 버티며 나를 따르는 모습이 대견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12살 딸과) 함께 하는 등산은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했었다. 나는 딸의 속도를 나름 배려하며 천천히 간다고 갔는데도 딸은 “엄마 다리 안 아파? 안 힘들어? 쉬면 안 돼? 얼마나 더 가야 돼?”를 연발하며 중간중간 발걸음을 멈추게 했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었다. ‘10월의 어느 날 혼자 다시 와야겠다.’     


그 10월의 어느 날이 오늘이었다. 다른 평일보다 일이 늦게 시작되어 나에게는 제일 여유로운 날인 금요일. 금요일부터 주말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일이니까 주말보다는 사람도 적을 것 같았고, 딸이 등교할 때(오전 8시 20분) 같이 나오면 비교적 이른 시간이니 혼자 오롯이 가을의 산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처럼 동네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검단산 입구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걸어서 갈 계획이었다. 버스에 올라타고 약 20여 분을 가는 동안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사실 나는 여러 가지를 혼자서 제법 잘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돌이켜보니 등산을 혼자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든 처음은 어색하고 낯설고 설레고 긴장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검단산 입구에서 내려 등산로 입구에 들어선 순간  긴장감이 사라진  느끼면서 내가 긴장했던 이유가 다른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유 - 3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매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헷갈려하는 수준, https://m.blog.naver.com/rend_/222656012430

못지않은 길치여서 지난번 딸과 왔을 때도 버스에서 검단산 입구까지 가는  짧은 길을 헤맸었기에 오늘은 더구나 혼자이니  혹시라도  길을  찾을까  버스에 타서부터 조금씩 심장이 쿵쾅댔었다.      


그래도 그 긴장감이 기분 나쁠 정도나 일을 그르칠 정도는 아니었고 나의 두뇌와 몸을 약간 경직된 채로 약간 예민한 상태로 유지시켜줄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딱 한 번에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 경직된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는 뭐 일사천리.      


지난번에는 딸과는 중간에 약 5~6번을 쉬며 올라가서 정상까지 약 100분이 걸렸는데 오늘은 중간에 사진 찍느라고 물 먹느라고 잠깐 멈춘 거 말고 앉아서 쉬지 않고 죽 올라갔더니 약 70분이 걸렸다. (다음번에는 1시간이면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주말이어서 넓지 않은 정상에 사람이 꽤 많아서 사실 좀 당황스러웠던 그날과는 달리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또 안개 때문에 저 멀리까지 풍경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낀 하늘을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것대로 또 좋았다. 가방에 싸온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 먹는 사람들이 잠깐 부럽기도 했지만 챙겨 온 것이라고는 물 뿐이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물이 맛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물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하다 했는데 마침 딸의 가방 구석에 들어있던 막대사탕을 발견해서 급속 당 충전을 하니 또 좋았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나의 표정도 순간 포착하고.      



잠깐 앉아있자니 사람들이 점점 더 올라오기 시작해 나는 슬슬 내려가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내려가 봤는데 그 길은 너무 힘들었던 기억에 오늘은 올라왔던 길과 같은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남편이 우리가 내려올 때 맞춰 데리러 와주었지만 오늘은 집까지 혼자 돌아와야 했으므로 왔던 길 그대로 내려가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할 것 같았다.      


내려오는 길에 아까 등산로 초입에서 내가 앞질러 왔던 여성을 다시 만났다. 사실 그 여성을 기억하는 이유는 복장 때문이었다. 나도 뭐 딱히 등산에 걸맞은 차림은 아니었지만, 그 여성은 종아리까지 오는 어중간한 길이의 치마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가죽 백팩을 멘 채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던 터에 지나쳐가며 속으로 ‘무슨 저런 차림으로 산에 온담.’ 했었는데 그 여성의 일행은 크롭티에 통청바지 차림인걸 보며 ‘무슨 사정이 있겠지.’ 했었다.      



또 오늘 나의 고독한 등산에 잠깐씩 환기를 시켜줬던 순간은 스틱을 든 사람들의 소리였다. 혼자 검단산을 갈 거라고 하자 누군가가 스틱을 꼭 챙기라고 했는데 죽어라 남의 말 안 듣는 나는 굳이 스틱을 사는 것도 귀찮고 해서 오늘도 스틱 없이 등산화는커녕 러닝화 따위를 신고 산을 올랐다. 그래서일까. 나의 앞이나 뒤에서 누군가 스틱을 탁탁 치며 걸어가는 소리가 날 때마다 나를 걱정해준 사람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오늘 나 홀로 등산에 최고의 동반자는 심심해할 틈 없이 툭툭 떨어져 주던 솔방울, 도토리들과 나뭇잎들, 나무를 딱딱 쪼아대던 딱따구리들, 형형 색색의 단풍잎들, 그리고 바로 울창한 숲을 뚫고 들어오던 아침 햇살이었다. 스포트라이트. 한 지점만을 비추는 빛. 생각난 김에 정확한 뜻 찾아보기.     



spotlight

1. 무대의 한 부분이나 특정한 인물만을 특별히 밝게 비추는 조명 방식. 또는 그런 조명.
2. 세상 사람의 주목이나 관심을 받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 앞에 자연이 만들어낸 스포트라이트가 펼쳐지는 그 순간, ‘오늘 등산은 이것을 본 것으로, 이 사진을 찍은 것으로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스포트라이트’라는 단어만으로도 또 한 편의 시나 글이 충분히 나올 테지만 오늘의 글은 이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 이제 혼자 놀기는 끝내고 일 모드로 전환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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