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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1. 2022

이태원 참사 4일째

애도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회사에 있는데 계속 가슴이 타는 것 같고 쓰리고 숨도 가쁘고, 머리꼭지가 돌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 슬픔의 감정 또한 부끄러우니 내 감정 둘 곳을 모르겠다. 미칠 것 같은 공허함, 허망함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하나도 모르겠어. 사는 게 부끄러워... 애도는 하되 일상을 산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거니. 나는 그런 거 잘 못해... 울음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 게 내 안간힘이야. 이 정도가 내 정신줄이야...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금은 인친으로만 남아 있는 아는 언니가 어젯밤에 인스타에 올린 글을 나는 오늘 새벽에 봤다. 내가 기억하는 그 언니는 눈이 크고(눈이 큰 사람 중에 유독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는 건 나의 착각일까?),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나와도 금방 친해졌었다. 그래서 심지어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간 적도 있다.      



아무튼 이태원 참사로 이렇게나 힘들어하는 언니의 글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애도는 하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멀쩡하게 일상을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언니뿐 아니라 누군가는 어제 출근을 할 때 검은 옷을 입고 갔다고 하고, 합동 분향소에 가서 조문을 하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도 많으며,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은 자신들의 페이지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도합니다.’라는 문구를 올리고, 각종 방송이나 행사들도 당분간은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11월 5일까지는 국가애도기간이라고 한다.     



나는 비교적 일찍(토요일 밤 12시경) 그날의 소식을 접했는데, 처음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봤을 때 핼러윈 데이 이벤트인 줄로만 알았었다. 사람들이 웃통을 벗고 길바닥에 누워있고 소방대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응급처치를 하는 그 모습이 실제상황이라고 믿기지가 않아서였겠지. 그런데 포털에 속보가 뜨고 확인을 해보니 시체 코. 스. 프. 레. 가 아니고 실. 제. 상. 황.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래서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한 솔직한 이유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을 너무나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일요일에 딸아이가 핼러윈 데이를 맞아 친구들 3명과 함께 롯데월드를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롯데월드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이 갈 텐데 아무리 훌쩍 컸다고는 하나(딸의 친구들은 이미 나와 비슷한 키) 그래도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인 여자애들 4명만 놀이동산에 들여보내도 괜찮을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에 되었는데 다른 엄마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우선 계획한 대로 우리 집 앞에서 아이들을 태워 롯데월드까지 데리고 가서 입장권 QR코드를 찍고 뛰어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 나왔다. 중간중간 딸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저녁 7시경 남편이 아이들을 무사히 차에 태워 저녁을 먹으러 왔다는 톡을 받기까지 내내 마음을 졸이는 하루였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에서 모르는 사람 수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내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어진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다. 그게 딱 일요일의 내 모습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0명이 넘는 사람이 어이없고도 고통스럽게 죽어갔는데 나는 내 새끼의 무사안일만을 생각하며 마음을 조리는 하루였다니.      



다행히(?) 내 가족이나 친구, 가족의 친구나, 친구의 가족이나 아니면 지인, 지인의 가족이나 지인의 친구 그 누구도 이번 사고의 희생자가 아니었기에 더더욱 ‘죽은 사람은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의 마음으로 딸과 그 친구들의 안전만을 기원했던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6개여서 나름 정신없었던 10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11월 1일, 참사 나흘째가 된 오늘 새벽에야 나는 나 자신의 무심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평소에 죽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죽음의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살아 있는 동안(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자 등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이런 태도에 어딘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 앞에서 다투지 말자고 했다가 어느덧 대화 자체를 안 하게 된 부부처럼, 조금 더 마른 몸을 원하다가 음식을 아예 거부하게 된 모델처럼, 사람들 앞에서 좋은 인상만 보이려고 애쓰다가 진짜 자신의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죽음의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거야, 죽어야 끝나니까 그전까지 열심히 살 거야를 외치다가 어느덧 죽음을 너무 가볍게 나아가 우습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나의 죽음뿐 아니라 타인의 죽음까지도. 죽음이 별 거 아닌 게 되어버리면 삶이라고 다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죽음은 무섭고 두렵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일 테고 그렇기에 죽지 않으려고 말 그대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가는 것 아닐까. 그런데 죽음이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고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것 아닐까.     


 

토요일 밤 근처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CPR을 몇십 명에게 했던 의사가 잠시 물을 마시던 중 옆을 지나던 20대들로부터 “홍대 가서 마저 마실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몸서리가 쳐졌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다음 술자리를 찾더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3시간 CPR' 의사 절망한 그때…"홍대서 더 마실까" 이 말에 소름 (naver.com)




이태원 참사 다음날 아이를 롯데월드에 보내고 영화를 보고 점심으로 단호박 피자와 자몽에이드를 먹은 내가 그 20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애도로 돌아와서 나는 세월호 노란 배지를 한 번도 단 적이 없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 나가본 적도 없지만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어떤 단어로도 그 마음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겠지만, 앞으로도 어떤 날 문득문득 그날이 떠오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마다 애도의 방식은 다를 테니까. 애도를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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