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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07. 2022

160921-05

이사 다음 날


석현 #2     


담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몇 층을 눌러야 할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살던 집에서 이삿짐을 다 싣고 출발하기 전에 피운 담배가 마지막이었다. 요즘은 아파트에서 집 베란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바깥에서도 담배를 함부로 피우면 안 된다. 그래도 어느 아파트든 흡연자들이 맘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들이 한두 군데는 있게 마련이다.



1층으로 나오니 아파트 정문이 아닌 후문과 바로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다. 나온 김에 정문으로 연결되는 길을 알아둬야겠다 싶어 다시 들어와 계단을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본다. 지하 1층에도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지만 나가보니 관리사무소라고 적힌 작은 건물이 있어 담배를 피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싶다. 다시 계단을 통해 지하 2층으로 가보니 차들이 드나드는 큰 입구 말고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입구가 보인다. 그쪽으로 나가보니 이미 먼저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가 보인다. 이 아파트에서는 이곳이 흡연자들의 공간이구나 싶어 안도감을 느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몇 모금 피우고 나니 주연에게 한 말이 후회된다.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꼭 싸움 끝에 내가 하게 되는 말. 어느 광고에서였는지 어떤 책에서였는지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항상 기억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또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이나 말이 나에게는 그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도 같다. 오히려 나는 이런 경우에 주연 역시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매번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주연과 싸우고 싶지 않지만 함께 살다 보면 부딪힐 일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럴 때는 대화를 통해 바로바로 푸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연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갈등 상황이 정점에 이르면 입을 닫아 버린다. 지나친 과묵함. 지나친 절약정신 못지않게 내가 주연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 바로 과묵함이다. 절약정신과 과묵함. 남들은 가까이 엄마만 해도 주연의 그러한 면을 높이 샀고, 나 역시 연애할 때는 또래의 여자들과 다르게 아낄 줄 알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주연이 좋았다. 하지만 함께 일상을 보내다 보니 그 2가지가 내 가슴을 조금씩 짓누르는 것 같다. 답답함을 떨쳐내기 위해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라이터를 켜려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유~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어떡해요~애들도 지나다니는데~아 냄새~”



라이터를 내리며 얼굴을 들어보니 모르는 얼굴이다. 누구지? 왜 목소리가 익숙하지? 아 어젯밤 그 여자구나.


 

어젯밤, 신발장 정리, 액자와 시계, 화장실 선반 달기, 책장을 조립해서 책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몸을 놀렸더니 어디든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막 소파에 몸을 기대는데 주연이 현관에 있는 쓰레기들을 밖으로 내어 놓으란다. 내일 하자는 말이 입술 끝까지 나왔다가 이번 이사만큼은 싸우지 말고 넘어가자 라는 생각에 쓰레기들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들을 주섬주섬 비닐에 넣고 있는데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옆집에서 현관문을 빠끔히 열고 얼굴은 안 보이게 뒤로 숨긴 채 어떤 여자가 말을 했다.


 

“아유~이 밤에 시끄럽게 뭐 하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하던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을 닫았던 그 여자. 누구보다 내일 하고 싶었던 나였기에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런 원망을 듣자 늦은 시간에 나에게 이것을 시킨 주연에게 짜증이 났었다. 거기서 더 소리를 냈다가는 옆집 여자가 또 나올 것만 같아서 쓰레기를 빨리 담기만 하고 그냥 들어왔던 것이다. 그랬는데 결국 그 일 때문에 아침에 잠이 깨고 주연과 다투게 되었다. 어젯밤에 옆집 여자와 웬만해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이렇게 불편한 상황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 여자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작은 입구로 쏙 들어가 버린다.



왠지 그 여자 때문에 자꾸만 일이 꼬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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